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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과 다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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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패 달고 보니까 넘 커다란 이름이네요 ^^; 행여 고래 등 사이에 끼인 새우가 되지 않기를 ㅎㅎ 연암은 고미숙님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에서, 다산은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에서 삘 받았슴다. 잼난 놀이터가 되었으면... ^^
by 명랑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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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00:01

4월, 벚꽃은 길을 수놓고
라일락은 어둠을 물들이는데
가족의 아픔이 새겨집니다 - 4.3, 4.16, 4.19

 

비가 와서 연기된 야외예배. 다행히 연락이 잘되어 상문고에 들렸다온 아이들은 없네요. 샘들 중에는? ㅋ
'희락반'은 이래도 저래도 '희희락락' ㅎㅎ
이번주에는 부모님들에게 아이들도 예배를 위해 기도할 수 있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http://ya-n-ds.tistory.com/2319 ( 비와 함께 봄이 짙어 갑니다 )

 

샘들의 부족. 어느 정도는 이미 예견되었던 일이었죠. 한해 한해 버텨왔던 일이었으니까요.
조직을 그리기는 쉽지만 채우기는 어렵죠.
'주일학교에 투자한다'는 말의 의미가 뭘까라는 질문을 해봅니다. 담임목사님을 포함한 교역자들 사이에서는 이 물음에 콘센서스가 이루어졌을까?

대학교에 네비게이토라는 선교단체가 있습니다. '수도원'적인 삶, 교회와 세상을 분리하는 듯이 살아서 별로 바람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참 효과적이다 싶은 삶이 있습니다.
한 선배가 두 명 정도의 후배와 함께 학교에서 생활을 합니다. 그리고 1,2년이 지나면 그 후배는 전도를 통해 또 다른 후배들을 키우고.
한해 한해 그룹은 커지고 서로의 삶은 닮아갑니다.
교역자들이 1년에 두 명의 성도를 동역자로 키울 수 있다면? 현재 한국 교회 현실에서 가능할까?

교역자들의 '성과지표'는 (암묵적으로) 예배에 출석하는 인원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흥'의 척도가 됩니다.
하지만 '건강한 교회'를 위한 지표로서 맞을까요?
세상의 조직도 단순한 수량화를 지양하고 있는데, 영적인 영역을 중요시한다는 교회는 어떠해야 할까요?
http://www.mindprogram.co.kr/483 ( '성과', '성과지표' )

 

지난주 설교,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 눅4:31-37 )
http://www.sanjunghyun.or.kr/mboard/mboard.asp?exe=view&csno=&board_id=words&group_name=church&idx_num=24189

 

귀신은 예수님의 거룩함을 보고 떱니다 - 나는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서 떨고 있을까?
귀신이 떠난 후 그 사람은 어떻게 변화되었을까? - 나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아가고 있을까?

 

최근 정치권을 뒤집어 놓은 성완종님은 장로님이죠.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자살을 택했지만, 불법 정치 자금을 제공하면서 그 자리에 간 것 자체가 장로로서, 아니 그 이전에 기독교인으로서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요?
리스트에 오른 이완구님과 김기춘님은 카톨릭 신자입니다.

 

이분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함'은 무엇일까요?
교인들은 높은 자리에 올라간, 같은 종교를 가진 리더들을 자랑하고 지지합니다. '감정이입'이랄까요?
어쩌면 지금도 유행하고 있는 '고지론'의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http://ya-n-ds.tistory.com/2323 ( 고지론 vs. 미답지론 )

 

그리고 그 부작용이 장로와 목사들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죠.
http://ya-n-ds.tistory.com/2308 ( 교회의 아픔 : 장로 )
http://ya-n-ds.tistory.com/2271 ( 교회의 아픔 )

 

산정현교회 주보 뒷면에 보면, 선교마을에 '골프'가 들어가 있는데 혹시 '고지'를 지향하는 디딤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골프'는 그냥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굳이 드러낼 필요 없이 하면 될 것을 '선교'라는 말과 함께 쓰는 것이 좀 거시기합니다.

 

교회에서도 결과가 중요하지 과정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직'이나 '도덕'은 '있으면 좋고' 정도가 아닐까요?
이런 것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개신교에서 장로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이명박님을 지지한 대선이었을 겁니다.

 

2007년 대선 이후 김훈님의 인터뷰에 이런 부분이 나옵니다.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셨나요.
"제가 찍은 사람이 대통령 된 게 처음입니다. 도덕성에 대해 꺼림칙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살다보면 더럽혀지는 부분이 있는 것이지요. 백지상태보다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불순, 부도덕을 옹호하는 말은 아닙니다."
(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12261830031 : 김훈 “말이 잃어버린 품격 회복 이젠 희망의 소설 쓸 것” )

 

개신교인들 역시 비슷한 논리로 '도덕성' 부분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고 지지를 했을 겁니다.

그런데, 장로 대통령은, 많은 결정 권한을 가지게 되는 정치인들의 도덕성을 유권자들이 간과할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습니다.
4대강, 자원외교로 단군이래 최대의 국고 탕진을 했습니다.
http://ya-n-ds.tistory.com/2023 ( 4대강 )
http://ya-n-ds.tistory.com/2238 ( 자원외교 국정조사 )

 

이명박님을 지지했던 기독교인들은, 자녀들과 손주들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할 세금이 사라지고 오히려 그들이 컸을 때 부담해야 할 세금을 늘리는 데 일조를 한 것입니다.
( 개신교인들 중 상위 5~10% 정도에 속하는 사람들은, 세금 감면을 통해 자녀들과 손주들에게 줄 수 있는 돈이 늘어났을 수도 있겠네요 ㅎㅎ )

 

민주주의의 기초라고 하는 선거에 국정원, 사이버 사령부 등의 국가기관이 개입했습니다.
http://ya-n-ds.tistory.com/1996 ( 국정원 댓글 수사 )
http://ya-n-ds.tistory.com/1905 ( 사이버 사령부 댓글 )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알 필요는 없습니다.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정직하지 못하면 공익보다는 사익을 추구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이 결정되기 쉽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위기 11:45)
하지만 요즘 개신교인들에게 '거룩'은 찬송할 때나 기도할 때만 사용하고 실제 삶과는 관계없는 말이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궁금합니다.
그 원인은 편리한 영적 구원의 방법으로 '이신칭의' 교리를 사용하고 거기에만 머물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 '말로 예수님을 주라고 하면 구원을 얻고, 잘못한 일이 있는 것 같으면 주일 예배 시간에 잠시 뉘우치고'... '참 쉽죠~ 잉'
http://ya-n-ds.tistory.com/2102 ( 천하무적 아르뱅주의 )

 

'용서(사랑)의 하나님'만을 바라보기에,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의 다른 기둥인 공의나 정의의 부분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믿음-행함, 순결-지혜의 짝처럼 기독교에서 사랑은 정의와 함께 가야합니다. 둘 모두 하나님의 거룩함에서 나오는 것이니까요.
http://ya-n-ds.tistory.com/1360 ( '팀 켈러의 정의란 무엇인가?' )

 

'사랑-정의'의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예배당과 세상에서 각각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일관성이 없어지고, 시쳇말로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이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예를 들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서는 침을 튀기면서 베트남전에 참여한 한국군의 만행에 대해서 눈감을 할 수 있습니다.
http://ya-n-ds.tistory.com/2266 ( 위안부 문제 )
http://ya-n-ds.tistory.com/1869 ( 라이 따이한 )


할머니의 어떤 기억
[토요판] 커버스토리 / 베트남전 성폭력 피해자들의 증언
‘위안부’ 피해자들이 연대의 손 내민
베트남전 성폭력 피해자들 첫 증언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88414.html

 

(보수)개신교 안에서 교역자들은 이런 정의의 문제를 다룰 준비가 되어있나요? 성도들은 이것을 배우고 싶어할까요?
예장합동에서 나름 깨어있다고 보여지는 분당우리교회, 산정현교회는 어떨까요?

 

이번 주에 만나서 새로운 생각을 해볼 수 있게 해 준 글 하나 - 'One for All, All for One'의 의미
https://www.facebook.com/dongseok.tschoe/posts/10202675767895128 ( 서양문명의 기원은... )

 

사회정의가 이루어지기 위해 '최소수혜자'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네요. 읽으면서 예수님이 얘기한 '이웃'이 떠올랐습니다.
"너는 이 세 사람들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라고 생각하느냐?"  
율법학자가 대답했습니다.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 준 사람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똑같이 하여라!" "

 

'미답지'를 찾아가 아픈 사람들의 '이웃'이 되어 그리스도의 향기가 될 것인가, '고지'에 머무르면서 이웃의 아픔에 눈감으며 썩은 냄새를 내어 하나님의 아픔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4월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나요?

 

 

※ 다른 'Dear샘s' 보기...
http://ya-n-ds.tistory.com/tag/Dear샘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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