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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과 다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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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패 달고 보니까 넘 커다란 이름이네요 ^^; 행여 고래 등 사이에 끼인 새우가 되지 않기를 ㅎㅎ 연암은 고미숙님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에서, 다산은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에서 삘 받았슴다. 잼난 놀이터가 되었으면... ^^
by 명랑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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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00:00

7월 2일 9시 예배에 가는길. 잠시 멈췄다가 아침부터 조금씩 내리던 비가 시청앞 지하쳘 역을 나오는데 장대비로 바뀌어 있습니다. 빗속의 도로와 주변건물은 또다른 모습으로 나가옵니다.


바지 아랫단과 신발이 다 젖어 버렸네요. 성당 안에 들어가 오늘 예배 때 사용할 제1,2독서와 복음서를 노트에 정리하고 있는데, 옆에 앉은 어르신이(아침 이른 예배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오신 분들 대부분이 같은 자리에 앉습니다) 항상 무엇을 그렇게 적느냐고 물어봅니다.
"오늘 예배 때 듣게 될 성경 구절을 미리 정리해 보고 있습니다. 독서자가 읽을 때 이해가 더 잘 되더라구요"
어르신이 빙그레 웃으시면서 당신은 집에서 한번 읽고 오신다네요.
성경을 묵상하는 방법 중에 Letio Divina에 대해 비아메디아에서 배운 기억이 있습니다. 감사성찬례의 제1,2독서, 복음서 순서를 이것과 연결시켜 생각해 볼 수도 있겠네요. 미리 한번 읽어보면 들을 때 좀더 집중해서 곱씹어볼 수 있던 것 같습니다.

 

12주 과정을 마무리하는 졸업식. 15분 전쯤 강의실에 가보니 조교님들이 칠판에 졸업식 표지를 붙이고 있습니다. 정말 끝나나 보네요.
캔틴룸에서는 식후 '만찬'에 사용할 음식을 준비하는 손길이 바쁩니다. 잠시 창밖을 내다보면서 그동안의 과정을 한번 떠올려 봅니다.

 

시간이 되어 식이 시작합니다. 과정을 총괄했던 유상신 신부님의 말처럼 친교와 상통이 있었고, 교육 내용과 자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격려가 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90%가 넘게 수료를 하게된 16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강의와 행사에 한번도 빠지지 않아서 제자상을 받았습니다.  회사의 일이 자꾸 연기되는 바람에 2017년 상반기는 좀 여유가 있어서 시간을 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 자신의 터닝 포인트을 위해서 하늘이 도왔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ㅎ

 

지난 주에 조교님이 소감 발표를 해야 한다고 일러 주었죠. '어떻게 해야 하지?' 올해 1월 1일부터 시작했던 성공회에서의 여정과 전반전의 쉼표가 된 비아메디아를 떠올려 봅니다.
'180일간의 여정, 그리고 잠시 멈춤 쉼표 - 초보자를 위한 성공회 사용 매뉴얼'
처음에는 쑥스럽기도 하고 귀찮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런데 덕분에 성공회에서의 시간을 뒤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네요. 발표기회를 주어서 감사 ^^

 

새해 첫날 성공회 성당에 발을 디뎠습니다. 예수원에서의 예배가 인상적이어서, (대천덕 신부님이 성공회 쪽이었으니까) 그런 느낌이 있지 않을까하고 나오게 되었죠.
두번 정도 예배를 드린 후 그 인상을 적었습니다. 이해되지 못한 것도 있었고.
http://ya-n-ds.tistory.com/2767 ( '데이트' in 서울주교좌성당 - 성공회 예배 )

 

김대묵 신부님이 강의에서, 가로 시간축과 세로 공간축을 그린 후 그곳을 채워가는 것이 삶인데, 신자의 삶은 단순한 크로노스의 시간이 아니라 하느님이 함께 하는 카이로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교리가 단순한 지식(신학)체계가 아니라 구원을 삶에 채우고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어쩌면 1월 1일 이후에는 성공회 교리가 스며있는 전례를 경험하면서 저를 채우고 변화시켰던 시간이었겠네요.
이런 의식을 가지고 하루를 살아가려고 하다보니 사람들을 대할 때 한번 더 생각을 해보는 경우가 늘었습니다. 이런 기초를 마련해준 신부님에게 Thanks~

 

미국에 오랫동안 살다가 한국에 들어온 과친구와 만나서 요즘 성공회에 다닌다고 하면서 예배에서 느낀 것을 얘기해 주고 윗글을 읽어보라고 했더니 돌아오는 주에 온다고 하네요.
그 주일에 친구가 새신자모임에 가자고 해서 머뭇거리다가 친구따라... 그주부터 새신자 13주 과정이 시작된다고 해서 오후시간은 어린이예배실에서.
시니컬하고 츤데레 느낌의 유상신 신부님의 독특한 성공회에 대한 강의. 다음주부터 즉문즉답에도 가고. 친구 덕에 감사성찬례와 성공회 신학에 대한 지식을 쌓고 의문점을 풀어나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주일을 보내다가 비아메디아라는 과정 신청을 받는다는 광고를 듣고 그주에 바로 신청. 친구를 불렀는데 그 친구덕에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디게 된 경우겠죠.

 

비아메디아 과정이 거의 끝날 무렵 주낙현 신부님이 지나가는 말로 그동안 배우고 경험한 것을 가지고 성공회란 무엇인가를 적어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날 집에 가서 끄적거립니다.
'하느님 앞에서 인간의 유한함을 알고 성령의 도움으로 이성을 통하여 성경과 역사(전통)에서 하느님의 마음(은총, 신비)를 찾아 전례와 삶 속에 녹여 예수의 몸인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를 세워가려는 공동체'

 

영성신학을 맡았던 구균하 신부님이, 인간과 하느님이 만나는 출발점으로 '인간의 유한성'을 얘기했습니다. 칠판에 그렸던 작은 네모, 사람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창이었죠. 하느님의 은총도 이 제한된 창을 통해서 올 수밖에 없는데, 아무리 작은 창이라도 빛이 들어오면 그 공간이 밝아지듯이 무한한 존재가 유한한 곳을 통해 다가오는 것이 바로 신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정점이 예수의 성육신 사건일 거구요.
이 유한함으로 인해 겸손해질 수 있고, 하느님을 이해하는 데 성령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공동체의 여러 사람들이 가진 창문으로 들어오는 풍경을 모아 하느님과 그의 나라에 대한 이해를 늘려나갑니다. '집단지성' 개념과 비슷?

 

강의에 나왔던 동방교회의 수동적 방법(Via negativa, Apophatic theology) 역시 인간 지각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겠죠. 그동안 익숙했던 서방교회의 능동적 방법(Via positiva, Cataphatic theology)과 다르게 하느님을 바라볼 수 있어 생각의 경계를 넓히는데 도움이 되겠네요.

 

세계성공회에 대해 얘기했던 유시경 신부님이 성공회교회의 특징 중 하나가 '논쟁의 교회'라고 했습니다. '논쟁'보다는 '토론'이 더 어울릴 것 같은데, 아무튼 다른 관점들을 포용하고 수용하려는 마인드입니다. 이것 역시 하느님에 대해 나의 의견이 틀릴 수도 있다는 유한성을 인정하는 겸손함이 바탕이겠죠.
성공회 내부에서는 공동기도서를 가지고 드리는 예배로 하나되려고 하지만, 신학적 교리적 이견들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뒤돌아보는 공동체가 됩니다.
밖으로는 에큐메니컬 운동과 같은 다른 교파와의 '일치'를 위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림 하나가 기억에 남습니다. 사각형과 그안에 내접하는 원, 그리고 그 원에 있는 삼각형. 너무 단순한 표현이지만, 사각형은 천주교, 원은 성공회, 삼각형은 개신교의 교리나 내용을 의미합니다. 실상은 사각형을 넘어가는 원과 삼각형 부분도 있어야 할 겁니다.
중요한 것은, 다름에 집중하지 않고 이미 공유한 것을 디딤돌로 서로 논의를 해나가며 그 범위를 조금씩 넓혀 나가려는 노력을 하는 모양새입니다.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내 삶을 바꾼 한 구절'(박총, 포이에마),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 것에는 자유를, 그리고 모든 것에 사랑을'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데, 성공회가 이런 방향으로 움직이나 봅니다.

 

살아가면서 개인적으로 만나는 사람들과 차이보다는 공통된 점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번더 되새김질 하게 해준 구신부님과 유신부님에게 Grazie ^^

 

성서 강의는 성경을 바라보는 두 방법, 성서비평과 축자영감설을 설명하면서 결국 이 둘을 모두 넘어서야 한다는 화두를 던지면서 마무리했는데 '中道'라는 뜻의 '비아 메디아'의 목표 중 하나일 겁니다. 짧은 시간에 성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느라 진땀 흘렸을, 그리고 성경을 대하는 '화두'를 던져 준 양지우 신부님에게 Danke!
아, 새신자 교육에서 유상신 신부님이 소개해준 '예언자적 상상력'(월터 브루그만, 복있는 사람)을 강의 듣는 중에 읽었는데, 사람들의 무감감을 일깨우려는 성서의 언어와 그것을 지금 시대에 적용해보려는 시도들을 강의 내용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성공회 전례와 신학에 대해 이야기해준 주낙현 신부님. 성공회의 역사뿐 아니라 여러 신학자들의 얘기를 통해 하느님를 바라보는 여러 '창문'을 보여줍니다.
'헨리8세는 잊고 토마스 크랜머를 기억하세요', '신학 얘기가 나오면 칼 라너로 시작하세요'... 기억에 남네요 ㅋ
수강생들로부터 미리 질문을 받아 준비한 내용에 녹여서 설명했는데, 자연스럽게 예시가 되어 눈높이 강의가 되었습니다.

 

2000년 동안 사람들이 쌓아온 하느님을 향한 예식들을 살려내고 다시 해석하여 성공회 전례를 만들어가고 있는 모습, 역사를 아는 것은 어느 조직에서나 중요합니다.
이 기간 동안 '기독교의 역사'(알리스터 E. 맥그라스, 포이에마)를 읽었는데 강의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것들을 알 수 있어 강의 내용을 좀더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았네요.
'즉문즉답' 시간처럼 늘 '우문현답'(愚問賢答)을 통해 전례의 의미를 알려주고 그로 인해 제 신앙과 일터에서의 삶을 돌아보게 해준 주신부님에게 謝謝~

 

성지주일에서 부활주일까지 성삼일을 지나 부활이라는 클라이막스를 향해가는 한주, 전례의 신비를 느꼈습니다. 올해는 부활절이 세월호 3주기와 겹쳐서 그 의미를 더 깊이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http://ya-n-ds.tistory.com/2836 ( 성지/고난주일에서 부활주일까지 )

 

교육 기간 동안 세번의 야외활동도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피정. 영성 실습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함께 둘러 앉아 신부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사람들과 함께 산책을 나가 해안가에서 각자 받은 성경구절을 묵상하고, 조를 나누어 Lectio Divina를 하고 각자 느낀 것을 나누었습니다.
조교님들이 만들어준 맛있는 점심도 먹고, 오가면서 사람들과 다양한 얘기들을 나누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친근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가지 못한 동창들이 아쉽네요.

 

푸른나래. 호수공원에서 아이들이 쓴 동시, 삼행시를 가지고 즐겁게 지냈던 시간. 짝꿍이었던 두 아이가 가끔씩 생각납니다. 영양사님이 만들어준 돼지불고기 쌈으로 입도 즐거웠네요 ^^

 

토요일 오전에 시작하는 야외활동. 한 조교님이 아침에 교회에 오는 김이 아침 미사를 드리면 좋다는 얘기를 했죠. 그래서 한번 나와보고 그후에는 토요일 행사 때마다 들르게 되더라구요.
작은 지하성당에서 드리는 감사성찬례. 옹기종기 모여 가족같은 분위기. 순서 맡은이와 눈이 마주치기도 하고... 주일 대성전에서 드릴 때와는 다른 느낌.

 

한번은 저에게 제2독서를 부탁하네요. 주위를 아침 일찍 비가 와서인지 예배 시작 전에 온 사람이 적었습니다. 그래서 'Yes'했는데... 그런데, 갑자기 '틀리지 않고 해야 되는데...'라는 걱정이 들기 시작합니다 ^^;
무사히 마치긴 했는데 예배에 독서 시작하기 전까지 집중이 잘 안되었습니다. 이 경험 후에 예배 순서 맡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하고 예배 전에 이들을 위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강화도 성당 탐방. 선교 초기 지어진 한옥 형태의 교회 건물들을 통해서 지역 특색을 존중하려는 성공회 정신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http://ya-n-ds.tistory.com/2878 ( 강화도 성공회 성당 투어 )

 

강의 때마다 일용할 간식을 챙겨주고, 공지사항을 전해주기 위해 시간을 내준 조교님들, 뒤에서 후원해준 양육위원회, 그리고 이 과정 전체를 맡아 조율한 유상신 신부님에게 고마움을 전해야겠습니다.
아, 월향에서 졸업식 뒷풀이를 대접해준 신자회장님에게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12주 동안 함께 먹고 토론하고 수다 떨고 사랑하며 배우며 이 잔치를 누렸던 16기 동창님들을 기억합니다.

 

액자에 들어있는 비아메디아 수료증, 교육 마치면 보통 종이만 받는데, 성공회의 격이 다른 건가요 - 마지막까지 담긴 정성을 봅니다. 제 방 책장 한켠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졸업 선물로 받은 작고 심플한 탁상용 십자가, 십자가 목걸이를 책상에 앉을 때마다 마주합니다. 성지 주일에 받은 성지, 새신자 교육 과정 중 묵주기도 강의 들었을 때 득템한 묵주 십자가와 함께.

 

돌아보니 반년 동안 많은 것들이 채워졌습니다. 전반전 후의 해프타임, 이제는 비워내고(몸은 기억하겠죠?) 다시 채울 준비 합니다 - '비긴 어게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생활의발견 다른 글 보기
http://ya-n-ds.tistory.com/tag/생활의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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