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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과 다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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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패 달고 보니까 넘 커다란 이름이네요 ^^; 행여 고래 등 사이에 끼인 새우가 되지 않기를 ㅎㅎ 연암은 고미숙님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에서, 다산은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에서 삘 받았슴다. 잼난 놀이터가 되었으면... ^^
by 명랑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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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00:01

## 10월 29일 (해)
알람에 맞춰 6시쯤 일어나 씻고 아침 먹으러 아랫층으로. 식빵을 토스기에 넣고, 우유에 커피를 타고, 계란후라이를 하고, 빵이 나오자 땅콩잼과 딸기잼을 발라 냠냠. 라면을 끓여 먹을까 하다가 설거지 하기 귀찮을 것 같아 패스.
설거지 마치고 치카치카 하고 7시 조금 넘어 나옵니다. 게스트하우스 풍경을 찍고 있으니까 어느 아주머니가 다가와서 잠자리가 어땠냐고 물어봅니다. 쥔장인가 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줍니다. 알고보니 모퉁이에 있는 동네슈퍼 아주머니인데 아침에 게스트하우스 손님들 만나면 이야기 듣고 주인에게 알려주나 봅니다. '이웃 사촌'인가요 ㅎ

 

오전 7시 40분쯤 임동5거리 정류장에서 518번 버스를 탑니다. 번호가 상징적이죠.
금남로를 따라 가다가 아시아 문화전당을 왼쪽에 끼고 돌아 광주역 앞을 지나 신안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호남선을 가로질러 전남대학교에서 오른쪽으로... 광주역 근처 곳곳을 보면서 8시 20분쯤 국립 5.18 민주묘지입니다.

 

잘 정돈된 길을 따라 민주의문 앞까지. 잔잔한 음악이 스피커를 통해 나옵니다. 주위의 살짝 물든 단풍이 단아합니다.
시간이 일러서 그런지 직원들로 보이는 사람들만이 한둘씩 가끔 보일 뿐 맑은 햇살과 시원한 바람만이 느껴집니다.

 

묘역 앞에 있는 높이 솟은 기림탑. '나의문화유산답사기(제주편)'에서 유홍준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죠 - 우리나라는 장소에 관계 없이, 4.3 유적지 예를 들면서, '뿔탑' 형태의 기념탑을 세운다고. 이곳도 이런 탑이 어울릴까 느낌을 받습니다. 어쩌면 '국가에서 이 정도까지 해줬어!'라고 하는 듯한... 넘 까칠한가요? ^^;


가지런히 놓여진 봉분과 비석들. 10묘역 설명이 눈에 들어옵니다 - '10묘역은 행방불명자 묘역으로 사망한 사실은 확인이 되었으나 시신을 찾지 못해 봉분없이 영(靈)만 모셔져 있습니다', 비석을 보니 다른 곳의 '아무개의 묘' 대신 '아무개의 령'이라고 써져 있습니다.

 

유영봉안소에 참배를 하고(문득 안산 세월호희생자 분향소에 갔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5.18추모관을 들러 유품과 기록들을 봅니다. 망월동 구묘역으로 가는 길 담장에 새겨진, 그날을 생각나게 하는 부조들.
이곳에 안장된 분들 말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암매장되어 가족들을 만나지 못할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TT
http://ya-n-ds.tistory.com/2854 ( 5.18 광주민주화항쟁 )

 

구묘역을 보고 찻길로 나와서 버스정류장을 가는 도중에 518 버스가 보입니다. 손을 들었더니 세워주네요. 이전에 왔던 길을 거슬러서 터미널까지. 중간에 잠시 멈추었을 때 은행열매가 버스 위에 떨어져 통통거리는 소리가 듣기 좋습니다.
휴일, 느즈막하게 도시가 깨어난 듯 지나는 곳곳에 사람들이 북적입니다. 터미널에서 내려서 농성역 방향으로 가다가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월산5동 정류소에서 하차. 화성회관을 찾아갑니다.


광주 성공회, 처음에는 입구를 못찾음. 창문에 붙어 있는 '광주성공회' 글자 중 일부는 자음 모음의 일부가 끊겨 있습니다.
계단을 올라 10시 55분쯤 예배당에 들어갔는데 아무도 안보입니다. 어 시간이 맞나? 인기척을 들었는지 세제복을 입으신, 자그마한 체구를 가진 분이 나와서 반겨 주십니다,  김경일 신부님인가 보네요. 광주 왔다가 들렀다고 얘기하고 자리에 앉습니다.

 

앙증맞은 성수대가 눈에 띕니다. 제대 뒤 벽 기둥에 고상십자가, 제대 위에는 소박한 나무십자가와 초가 있습니다.
성경과 성가책, 기도서를 가지고 앉으니 잠시 후에 한두 분씩 들어오십니다.

복사는 영등포교회에 다니는, 광주 집에 가족행사가 있어서 내려온 청년이 맡습니다. 성가대는 따로 없습니다.
감사성찬례 기도문들, 집례자나 성가대가 음을 확실하게 잡지 않으면 흐트러지기 쉽죠. 서울주교좌 성당에서 드리는 아침 예배처럼 곡 없이 기도문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난 제주도에서의 예배 이후 지역 성당에서의 예배, 사람이 적어서인지 가족 모임같은 주일 감사성찬례입니다.
http://ya-n-ds.tistory.com/2937 ( 올레 마무리 : 다섯째날 )

 

평화의 인사 나눌 때는 자리를 떠나 돌아다니며 악수하고 안부를 묻고 반겨주네요. 서울성당에서는 이렇게 해본 적이 없어서 왠지 어색하기도 하고.
암튼 교구, 관구를 토대로 이루어지는 성공회교회는 다른 지역의 교회를 가도 같은 교회 성도라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개신교에도 교단이 있지만, 개교회 색채가 강하기에, 같은 교단이라도 다른 교회에서는 이런 마음이 생기기가 쉽지 않겠죠.

 

예배 후에 복사 섰던 청년이 영등포교회와 순서가 조금 다른 것 같아 중간에 놓친 게 있다고 하면서 웃습니다.
오늘은 한동안 예배에 못나온 교우들이 나온 모양입니다. 그리고, 성공회가 궁금해서 한번 와봤다는 가족까지.

 

탁자 몇 개를 이어서 교우들이 가져온 음식을 펼쳐 각자 접시에 덜어서 먹습니다. 한 교우가 냉장고에서 스팸을 꺼내 후라이팬에 구워냅니다.
이야기 나누며 식사 마친 후 남은 음식 정리하고 설거지, 그리고 감을 깎아 먹으면서 남은 서너분이 신부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눕니다. 저도 꼽사리로 ㅎ

 

흔하지 않은 직업인, 정치 컨설턴트를 하는 교우와 신문사 기자인 교우가 있어 요즘 매스콤에 나오는 정치 이슈들의 뒷얘기와 행간을 조금 읽을 수 있네요.

 

광주의 민주시민단체들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관심을 갖는 부분은, 단체장과 시위원 사이의 견제 장치를 만드는 거라네요. 당선된 후 공약을 지키지 않는 광주시장의 일탈을 막기 위해 정치를 계속해야 하는 시위원 후보자들과의 연대 등등.
들어보니 민주주의의 원리인 권력 분립에도 맞고, 공약이행율로 높일 수 있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광주에서의 실험이 잘 되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 좋겠네요.

 

성공회는 어떻게 알고 다니게 되었는지 물어보길래, 예수원에서 드렸던 예배가 기억에 남아 성공회 예배를 경험하고 싶었다는 대답을 합니다.
http://ya-n-ds.tistory.com/2767 ( '데이트' in 서울주교좌성당 )

 

김경일 신부님도 예전에 예수원에서 대천덕 신부님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내부의 알력들이 너무 큰 것을 보고 나왔다고 합니다.
공동체에 대한 미련이 있어 영국의 부르더호프(Bruderhof:형제들의 집) 공동체에도 있었다네요. 늦은 나이에 들어가서인지, 노동 강도가 너무 세서 계속 하기가 힘들었다고.
http://www.kmtimes.net/news/articleView.html?idxno=1753

 

예수원에서는 자립을 위해 공동체 나름의 수익사업을 하려고 했는데, 운영 방향이 후원금과 헌금쪽으로 정해진 것도 예수원을 나오게 된 이유 중 하나라고 합니다.
대천덕 신부님 말년에, 규모가 큰 건물을 지어 기도원으로 운영하려고 했는데 무산되었다는 이야기 - 성전 건축을 하려다 그전에 돌아가신 하용조 목사님 생각이 겹치네요.
대신부님 돌아가신 후 리더의 공백으로 공동체가 어려움을 겪을 때, 아들인 벤 신부님이 와서 안정되어서 다행이라는 의견.

 

이야기 하는 도중, 절필 선언을 했던 리영희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 "그러나 내가 산 시대가 지금 시대하고는 상황이 많이 다르고 내가 할 수 있는 한계가 왔다고 봤는데, 마침 그 한계와 지적 활동을 마감하는 시기가 일치해 하늘이 일종의 깨달음을 주는 걸로 생각하고 고맙게 받아들인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33253 : 리영희 교수 "이제 펜을 놓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60897.html

 

한편으로는 옥한흠 목사님이 생각났습니다 - '사랑의교회 마지막 사역으로, 당신의 후임으로 오정현 목사를 세운 것. 왜 그런 판단을 했을까?'
http://ya-n-ds.tistory.com/1366 ( 옥한흠 목사 )

 

성공회 얘기로 돌아옵니다.

오늘 설교 때 잠시 나왔지만, 성공회 신부님 중에도 사제가 어느 정도 재산이 있어야 성도들에게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런 이야기를 공공연히 하는 분들이 있다고. 이것이 바른 생각인지 주교, 그리고 당사자 신부님들과 함께 얘기를 해봐야 한다고.
전두환 정권 시절 성공회 주교가 조찬기도회에 참석하려고 했던 것을 신학교 학생들이 막았던 일.
서울교구에서 생긴 이전 주교의 잘못된 모습도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
그나마 성공회가, 현재까지는 교회 내의 잘못을 덮지 않고 드러냄으로써 그것이 점점 커지고 걷잡을 수 없게 될 정도까지 가지 않게 하는 자정능력이 작동하는 것은 희망이라고 말씀하시네요.
완전무결한 조직은 없죠. 중요한 것은 잘못을 어떻게 개선하느냐가 중요할 겁니다.

 

이야기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오후 5시가 가까워졌습니다. 오늘 둘러보기려고 했던 양림동과 금남로쪽은 포기해야 할 듯. 신부님, 그리고 기자 교우와 페친 맺기로 하고 일어섭니다.
광주성공회 경험, 이제는 대전교구도 저에게 한걸음 더 가깝게 다가왔네요. 어디 갔을 때 그곳 성공회교회를 방문하는 것이 보편적교회를 좀더 실제적으로 느끼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드네요.

 

조금 해가 남았습니다. 양림동쪽으로 가보기로. 백운고가차도 쪽으로 내려가다 왼편 주택가쪽으로 광주기독병원을 물으며 갑니다. 추위가 오려는지 바람이 어제와는 다르게 차갑습니다.
수피아여중고의 옛날식 건물들, 선교사들이 살았던 집, 호랑가시 나무... 금방 날이 어두워져버립니다. 호남신학대학교를 가로질러 정문으로 나와 길을 내려갑니다. 옆으로 일제시대 때 지어졌다는 건물들이 사이 사이에 나타납니다. 이곳도 서촌처럼 이미 관광지로 어느 정도 개발이 되었나봅니다.

 

음악이 들려오는 곳으로... '양림국제재즈페스티벌' 가을밤의 재즈라이브, 메인 무대가 만들어진 양림동 관광안내소 주차장, 푸드트럭들도 있고, 사람들이 여유로운 일요일 저녁을 맛보고 있습니다.

http://www.tournews21.com/news/articleView.html?idxno=27108


잠시 듣다가 서서평길을 따라 주변 지도가 부조 형태로 세워져 있는 양림동오거리로. 중간중간 이장우 가옥 등 가볼 만한 곳으로 안내하는 표지판이 있습니다. 낮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저녁은 먹어야겠죠? 딱히 마땅한 곳이 없어서 볼 형태의 오징어 튀김을 상추에 싸먹는 상추튀김을 맛보기로. 한번 경험으로 만족할 만한 음식. 중간에 게스트하우스에 방 있냐고 문의, 계좌번호와 함께 방 있다는 문자가 옵니다.
양림교를 건너 전남대학교 병원 앞에서 문화전당 쪽으로. 가다보니 새마을금고가 있어 방값 이체.

 

충장로 골목, 이곳이 광주의 명동 같은 곳인가 봅니다. 사람도 많고, 온갖 가게들도. 전국 5대 빵집 중 하나라는 궁전제과. 시간이 조금 늦어서인지 진열대의 빵들의 빈자리가 많이 있습니다. 먹고 싶은 것은 몇 개 있는데 배불러서 공룡알빵을 하나 삽니다. 바게트 안을 파내고 샌드위치에 쓰는 샐러드를 채웠습니다. 바삭하면서도 조금 질긴 바게트 겉부분과 부드러운 안쪽에 이어 감자와 계란을 으깬 샐러드로 이어지는 식감이 절묘합니다. 광주에서 꼭 먹어볼 만합니다. 맛보라고 잘라 놓은 빵조각으로 아쉬움을 대신하고 나옵니다.

 

빵을 먹으면서 금남로 공원까지. 여기도 꾸미려고 많이 노력을 했네요. 중앙로 쪽으로 걸어가보기로. 원각사라는 절이 있네요.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대인교차로에서 광주역을 향해 중흥육거리까지. 은행들이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NC 백화점을 이정표 삼아 가다가 골목으로. '별밤', 어젯밤에 묵었던 '그린'처럼 이층 가정집을 게스트하우스로 리모델링했나 보네요.
벨을 누르니 문이 열립니다. 거실에는 몇몇 사람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네요. 온기가 느껴집니다. 2층 방으로 안내. 깨끗한 4인실을 혼자서 쓰게 되었네요. 이틀 연속 '저렴한' 호사를 누립니다 ㅎ
씻을 수 있는 곳이 1층에만 있는 것은 조금 불편.

 

바람 맞으며 걸었더니 피곤합니다. 따뜻한 방에서 내일을 기대하며 잠자리로.
오후 일정이 완전히 바뀌었지만, 다음에 오면 양림동의 흔적들은 좀더 잘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보다 광주성공회 사람들과의 생각지 못한 이야기 자리는 소중하게 마음에 남겠네요.

 

p.s. 남도여행 - 둘째날
☞ https://www.facebook.com/thames.young/posts/1510782508989506

 

p.s. 10년 근속 휴가 후반전 (3) - 강진, 목포

http://ya-n-ds.tistory.com/2949

 

 

※ 생활의발견 다른 글 보기
http://ya-n-ds.tistory.com/tag/생활의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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