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ya-n-ds.tistory.com/1571 ( 10월 유신 )
☞ https://ya-n-ds.tistory.com/2123 ( 공주님과 난장이들 )
박정희를 ‘신라 왕의 후예’라고 섬긴 최장수 국회의장님
지역감정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려 했던 부류 가운데 역대 최장수 국회의장을 지낸 이효상씨도 있었다. 그는 박정희를 일컬어 신라 임금님의 후손이라고 추켜세웠다. 대통령의 국회 연설 때 의장석을 내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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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 감정이 아닌 지역 차별
동경제국대학 독문과 출신, 독실한 가톨릭 신자. 3선 개헌 날치기 통과 당시 의사봉 대신 주전자 뚜껑으로 깡깡깡 책상을 두들기며 개헌안 통과시킴 )
‘민의의 전당’에 X칠한 입신출세의 달인
제8대와 10대 국회의장을 거친 백두진은 국무총리도 두 번 지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비상 대권’을 부여하는 특별법안을 통과시켰고, 유정회 회장을 맡았으며, 김영삼 의원을 제명하는 등 의회민주주의를 무력화하는 데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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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상대(오늘날 히토쓰바시 대학) 졸업 -> 조선은행 취직, '대리'로 해방 맞음 -> 조선은행 이사 -> 재무부 장관 -> 1953년에는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국무총리’로 임명 -> ... )
죄는 지은 데로 가고 물은 트는 데로 간다
7대 총선에서 야당인 신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한 성락현은 ‘박정희 영구 집권’을 위한 3선 개헌에 찬성한 뒤 여당으로 가서 금배지를 단 ‘배신의 정치인’이다. 그는 여고생과의 성추문을 일으켜 몰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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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는 없어도 공안부장이 있다
1970년 3월, 한 여성이 총에 맞아 숨지고 그의 오빠 역시 총상을 입은 사건이 벌어졌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서울지검 최대현 공안부장이 사건을 맡았다. 최 검사는 ‘이수근 간첩 조작’ 사건에도 조연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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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마가 떵떵거리며 잘 먹고 잘 사는 곳이라면 그곳이야말로 지옥이 아니겠는가.” -> 이런 부역자들이 있어서 박정희 정권이 가능했겠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