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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과 다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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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패 달고 보니까 넘 커다란 이름이네요 ^^; 행여 고래 등 사이에 끼인 새우가 되지 않기를 ㅎㅎ 연암은 고미숙님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에서, 다산은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에서 삘 받았슴다. 잼난 놀이터가 되었으면... ^^
by 명랑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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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00:01

여름성경학교의 피로에서 다들 회복되었나요?
여름 행사가 마무리되고, 추수감사주일과 성탄절이 있기는 하지만, 올해 꿈나무교회의 힘든 일은 거의 끝난 것 같습니다.
교사회의 시간에 정리된 이야기이지만, 소년부 성경학교가 변화가 필요한 변곡점에 와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샘도 부족하고 체력도 저하되고, 사람에게 일도 몰리고 ^^;  사실 작년에 2015년 내다보면서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것이었죠. '교육위원회'는 이런 사정을 알랑가몰랑?
주일학교 교사가 세워지지 못하는 목회, 교회 전체로 봤을 때 그 방향이 맞나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희락반 ㅈㅇ이의 기도. 머리가 짧아져서 왔길래 물어보니까 머리카락을 기부했다고 하네요. 입과 몸으로 한 기도였네요.

 

성경학교 바로 전날의 주일 예배 설교 본문 - 누가복음 6:12~19 ;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산에 따라간 제자들, 그 중에 12명을 사도로 부릅니다. 평지에 있었던 많은 무리의 제자들, 그리고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
열두 사도나 제자 중에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한 사람도 있었을 거구요, 예수로부터 뭔가를 얻으러 왔다가 제자가 되어 삶을 마친 사람들도 있었을 겁니다.
그 주에 읽었던 골로새서 마지막 부분,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울 서신들 말미에 나오는 인사, 거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비교해 보면 바울의 말년까지 함께 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른 것을 끝까지 따르는 것은 많이 어렵습니다 ( ☞ http://ya-n-ds.tistory.com/2353 : '나를 따르라' ).
성경학교에서, 아이들과 샘들이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는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랐네요.

 

지난 주일 설교 본문 - 누가복음 6:20~26 ;
여기도 두 종류의 사람이 나오네요.
굶주리고, 울고, 가난한 자와 배부르고, 웃고, 부요한 자.
사람들에게 미움받고 욕먹고 버려지는 진짜 선지자와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는 가짜 선지자.
그런데, 예수님 때문에 미움받고 욕먹고 버려지는 '그날'에 기뻐하라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단락 마태복음 5장의 '8복'과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굶주리고, 가난하고, 주리고, 우는 것이 예수님 때문에 사람들에게 버림 받는 것과 함께 있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27절을 함께 보면, 이렇게 핍박 받는 것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날'에 '지금 여기에서'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 27,28절 )

 

그 이전에 봤던 6장 1~10절을 보면 안식일에 벌어지는 예수님과 바리새인 사이의 한 판 승부가 있습니다.
첫번째 계기는 제자들이 밀밭에서 이삭을 잘라 먹은 것이고 두번째 라운드는 안식일에 병든 사람을 고친 것입니다.

요즘 재미있게 읽고 있는 신영복님의 '담론'에 맹자를 소개하는 꼭지가 있습니다.
'곡속장의 이양역지(以羊易之)'
http://blog.yes24.com/document/8059857

 

제나라의 선왕이 제사에 사용할 소를 불쌍히 여겨 양으로 바꿨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맹자는 왕이 소 대신 양을 바꾼 이유가 소는 '보고' 양은 '못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소만 본 것도 '인(仁)'의 출발점이라고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이 본 것은 안식일의 규례였습니다. 예수님은 배고픈 사람, 아픈 사람을 보았습니다.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인용되어 유명해진 구절도,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인다'고 하듯이, 무엇을 볼 수 있는 것은 결국 나와 '관계'가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왕은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사람을 가릅니다. 양으로 칭찬 받는 사람과 염소로 심판 받는 사람의 차이는 그들이 보고 관심을 가진 대상이었습니다 -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마태복음 7장에서도 선지자 노릇, 귀신 쫓아내기, 권능 행하기가 하나님이 보고 싶은 것이 아닐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이렇게 질문을 해볼 수 있겠죠, 꿈나무교회의 성도들은 무엇을 '보고' 있나요?

 

8일이 입추네요. 제가 자주 가는 서점 건물의 천장은 이미 지난주부터 'Autumn Story'로 바뀌었습니다. 더위 마저 잘 견뎌내세요~
아, 이번주에는 김ㅎ샘을 볼 수 있나요? 어떤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을지 궁긍해집니다 ㅎㅎ

 

 

p.s. 예배 시간에 가끔씩 듣는 담임목사님의 부교역자들을 향한 투덜거림. 회사에서 짜증내는 '윗사람' 분위기가 납니다 - '나는 열심히 하는데 부서원이 제대로 받쳐주지 못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
그런 얘기는 예배 끝난 다음에 담당 교역자에게만 따로 해도 될 텐데, 주보에 있는 오타나 표시되지 않은 것들을 '짜증' 섞인 어투로 말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바울이라면 함께 한 동역자들에게 어떻게 했을까요? 바울은 계속 장소를 옮겨가며 교회를 개척하는 과정이어서 사람에 집중할 수도 있었겠네요.
교회가 커지면 담임목사는 일을(교회가 굴러가는 것을) 먼저 생각하게 되기 쉽습니다. '회사'가 되어 일이 사람을 가리죠. 한국 개신교에서 일어나는 문제 원인 중 큰 부분을 차지할 겁니다.
또 한번의 물음, '나는 꿈나무교회에서 샘과 아이들을 보고 있을까요?'

 

 

p.s. 사진 좋아하나요? 8월 첫주 토욜에 뜨거운 햇살, 매미의 울음으로 고즈넉한 돌담길 따라 잠시 들렀던 비비안 마이어의 렌즈 풍경이 기억에 남습니다.

 

‘셀피 원조’…동시대 두 남녀가 포착한 1960년대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698017.html

 

 

p.s. 6월 한껏 뜨거웠다가 지금은 잠시 잠잠해진 '동성애' 논란. 때가 되면 다시 끓어오르겠죠. 그때까지 한발짝 물러서서 그동안 나왔던 이야기들을 돌아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의 모습이 조금은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http://ya-n-ds.tistory.com/2366 ( 동성애를 둘러싼 '논리학 개론' )

 

 

※ 다른 'Dear샘s' 보기...
http://ya-n-ds.tistory.com/tag/Dear샘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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