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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과 다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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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패 달고 보니까 넘 커다란 이름이네요 ^^; 행여 고래 등 사이에 끼인 새우가 되지 않기를 ㅎㅎ 연암은 고미숙님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에서, 다산은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에서 삘 받았슴다. 잼난 놀이터가 되었으면... ^^
by 명랑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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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16:09

요즘 자주 노무현님의 묘비명이 떠오릅니다.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현실을 볼 때 '이래야 되는데...'라는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 아닌가 싶구요 - '깨어있슴'과 '조직'

한국 교회를 보면서 사회의 현실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http://ya-n-ds.tistory.com/866 ( [ㅇBㄷ] 종교 개혁... 쳇바퀴 돌기? )

그래서 노무현님의 말을 바꾸어 이렇게 되뇌어 봅니다.
'건강한 교회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성도의 하나된 영성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깨어있슴'은 네 가지 영역에서 필요합니다. 때론 그 경계가 모호하긴 하지만.

       개인
     3  |  1
사회 - - 교회
     4  |  2
     시스템

한 축을 '개인'(개인 윤리) 차원과 '시스템'(법률)의 차원으로, 다른 한축을 '교회'와 '사회'(교회 밖)의 차원으로 나누면 네 개의 영역이 생깁니다.

종교의 특성을 생각하면 1번 '개인-교회' 영역이 출발점이 됩니다. 교회 안에서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신실함이 필요합니다 - '예수님에게 하듯 하라'

두번째는 '교회-시스템' 영역입니다. 교회 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성도들이 깨어있어야 하는 부분이겠죠.
교회 공동체 활동의 투명성, 공정성 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 교회에서 담임목사의 부적절한 행동이 교회를 흔들리게 하는 것은, 이런 투명성, 공정성이 없거나 약하기 때문입니다.
'알아서 잘하겠지'라는 생각. 또는 '교역자의 권위'에 눌려서 '옳고 그름'을 생각하지 못하기 쉽습니다. 이 부분이 안되면, 교회의 주인이 예수님에서 담임목사나 당회로 바뀔 수 있습니다.
http://ya-n-ds.tistory.com/633 ( 교회의 아픔 )

세번째 영역은 기독교인이 교회밖에 있을 때의 자세와 관계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비난을 받는 이유 중 하나가, 믿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과 구별되지 않거나 오히려 더 도덕적으로 낮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는 열심있게 보이는 데 일터나 삶에서는 그렇지 못한 모습들. 1번 영역에서 필요했던 '하나님에게 하듯 하라'가 교회 밖으로 이어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교회 안에서도 실제로는 속과 겉이 다를 수 있을 겁니다.
말과 행동이 하나가 될 때 인정받을 수 있겠죠.

마지막은 교회밖에서 법률이나 제도와 만나는 부분입니다. 흔히 얘기하는 정치, 경제 영역이 그 일부라고 할 수 있겠네요. 요즘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영역에서 기독교인 시민으로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는가의 문제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의료민영화', '특목고(외고, 자사고), '4대강', '무상급식', '복지예산', '종부세', '부자감세', '시장만능주의', '한미 FTA'... 여기에 적용할 수 있는 '성경의 원리'를 교회는 가지고 있나?라는 질문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두 가지 문제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몇몇 목사님의 의견이 전체 교회의 의견으로 포장될 수 있고, 두번째는 '사회'의 작동 원리를 고려하지 않고 교회 내에서 가능한 원리를 직접 사회에 적용하려는 경우입니다.
앞의 예는, 한기총 같은 단체가 성명서를 내는 것입니다.
주일 설교에서 '한미 FTA'를 해야하는 이유로, '세계 1위, 2위의 선교국가인 미국과 한국이 더 쉽게 선교를 하기 위해서'라고 한 것은 교회의 지상명령인 선교만을 보고, 교회밖 사람들 의견과 정치, 사회적 영향은 고려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정말로 FTA와 선교가 어떻게 연결이 되나요? )
'대운하'에 대한 오정현 목사님의 칼럼도, 결국 그것의 추상적 의미만 생각하고 사회 현실을 고려하지 않았기에, 설령 교회 안에서는 은혜(?)로 넘어간다 하더라도, 교회 밖에서는 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 [오정현 칼럼] 대운하와 문명사적 소통 
http://www.godpeople.or.kr/column/4004

이렇게 되면, 교회가 '화합'과 '소통' 대신 '분란'과 '갈등'을 일으키기 쉽습니다. 'FTA'와 '대운하(4대강)'와 같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좀더 깊이 살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http://ya-n-ds.tistory.com/531 ( 한미 FTA... )
http://ya-n-ds.tistory.com/885 ( 4대강... )

이런 모습을 막기 위해서는, 결국 성도 한사람 한사람이 담임목사님의 말씀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베뢰아 사람처럼 성경과 비교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도행전 17:11 )
그리고, 교역자들은 특별 계시인 성경뿐만 아니라 일반 계시 영역인 사회에 대한 공부를 해야겠죠. 한국 대형 교회의 목회자는 보수적이기 쉽습니다.
남북 대결의 상황이 만든 반공 이데올로기, 유교적 가부장적 사회에서 나타나는 남성중심주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동일시, 성장을 우선시하는 시장만능주의(신자유주의)...
알게 모르게 몸에 깃들인 이런 것들로부터의 자유가 있어야겠네요.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8:32)

예전에 몇몇 책들을 읽으면서, 목사님들이 그책에서 제기하는 문제에 대한 답을 성경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정치'(짐 윌리스, 청림출판)
  ☞ http://ya-n-ds.tistory.com/696
'나는 반대한다-4대강 토건공사에 대한 진실 보고'(김정욱, 느린걸음)
  ☞ http://blog.aladin.co.kr/759552125/4211731
  ☞ http://blog.naver.com/beggarsoul/10094066432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장하준, 부키)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조지프 히스, 마티)
  ☞ http://ya-n-ds.tistory.com/812
'미래를 말하다'(폴 크루그만, 현대경제연구원)
'불편해도 괜찮아'(김두식, 창비)
  ☞ http://ya-n-ds.tistory.com/834
'이범의 교육 특강'(이범, 다산에듀)
  ☞ http://ya-n-ds.tistory.com/591

이런 과정을 이어가면, 교회가, '장로' 때문에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에 대해 권면을 하는 선지자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중적인 '정교(政敎) 분리'의 모습도 많이 사라지겠지요.
http://ya-n-ds.tistory.com/686 ( 정교 분리?!?... )
http://ya-n-ds.tistory.com/13 ( [연.다.사] 교회 & 정치 )
그러면 세상으로부터 '역시 다르다'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교역자들에게 초점을 맞췄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성도들의 성숙이 결국 교회와 목회자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나라의 성숙도는 결국 시민들 의식 수준에 달려있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사제들에게만 허용되었던 성경을 일반 사람들에게 돌려주었습니다.
한국 교회의 성도들은 루터의 그 성경을 받아 잘 사용하고 있나요, 아니면 다시 사제들에게 돌려 주었나요?
옥한흠 목사님은 평신도가 당신의 동역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동역자로 살아가나요, 아니면 추종자로 살아가나요?

'건강한 교회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성도의 하나된 영성입니다'

p.s. 글 중에 '사랑의교회'를 예로 든 것은, 그 교회가 한국교회 안에서 가지는 상징성 때문입니다.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03138 (‘10년 후 한국교회’ 이끌 목회자와 교회는 )
주위에서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입니다. 부담이 되겠지만 어쩔 수 없겠죠.
옥한흠 목사님의 목회가 나름 한국 교회에 성경적인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평신도를 동역자로 세우려는 제자 훈련과 대형교회의 교회 세습 탈피.
가끔씩 옥목사님 소천의 의미를 떠올려 봅니다.
http://ya-n-ds.tistory.com/826 ( [ㅇBㄷ] ▦ 옥한흠 목사님 소천 ▦ )
사랑의교회는 광야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이끈 후, 여호수아가 그들을 데리고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옥목사님은 제자를 세움으로써 정결한 교회를 만들려고 했다면, 오정현 목사님은 이제 그 제자들이 세상에 나가 그곳에 하나님나라를 만드는 H.E.A.R.T의 비젼을 가지고 있습니다.

Healing the Nation ( 민족을 치유하는 섬김공동체 )
Equippting the Disciples ( 제자를 재생산하는 훈련공동체 )
Assisting the Global Christial Network ( 세계선교를 마무리하는 연합공동체 )
Raising up the Next Generation ( 다음세대를 책임지는 비전공동체 )
Transforming Society & Culture ( 사회를 변혁하는 정감공동체 )

광야에는 아무것도 없기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나안에는 이스라엘을 그른 길로 가게하는 것들이 많았기에 사사기 시대를 겪었습니다.
사랑의교회는 가나안이라는 세상에 나가면서 더욱더 자주, 앞에서 얘기한 세번째와 네번째 영역에서 그 본질이 드러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H.E.A.R.T.의 교회로 인정해 주느냐, 아니면 스스로 만족하느냐.

p.s. 읽어 볼 만한, '교회의 대표성'에 대한 글이네요.
사랑의교회 건축과 "누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가?"
☞ http://post-evangelical.tistory.com/57

※ 다른 '생활의발견' 보기...
http://ya-n-ds.tistory.com/tag/생활의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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