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1일은 이용님의 '잊혀진 계절' 때문에 잊혀지지 않는 날일 뿐 아니라, 잊혀지기 쉬운 '종교개혁기념일'이기도 합니다. ( 아참, 할로윈데이도 있네요... 좀 묘하네요 ^^; )
1517년10월 31일 마틴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그 성당의 정문 벽에 붙여 발표하고, 중세 카톨릭의 잘못된 것들에 대해 비판합니다.
☞ http://kr.blog.yahoo.com/sulwsuk/11
( 누군가는 '기독교'개혁 기념일이지 어떻게 '종교'개혁 기념일이냐고 얘기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말을 굳이 만들자면 그 당시 유럽에서는 '종교=기독교'였겠죠. )
이 사건으로 오늘날 기독교라고 불리게 된 '프로테스탄트'가 생겼고, 또한 카톨릭도 변화되어 하나님에게서 멀어졌던 그리스도교가 성경의 가르침에 좀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개혁의 정신 중에서 (비록 그것들이 분리되지 않고 연결되는 것들이지만) 오늘날 한국 교회가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만인제사장주의'(萬人祭司長主義)가 아닐까 싶네요.
이는 '성직자'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해 직접 기도할 수 있고, 말씀을 서로 가르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자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올바로 반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데 자신의 역할을 하는 것, 즉,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한순간 한순간이 '예배'라는 것입니다.
루터가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함으로써, 라틴어를 공부한 성직자나 귀족만이 주로 볼 수 있었던 성경을, 독일어를 아는 일반인들도 볼 수 있게 하여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가는 '제사장'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겁니다.
현재 한국 교회에서 나타나는 많은 문제점의 원인 중 하나는, (특히 대형) 교회가 각각의 교회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담임 목사님의 권위가 중세 카톨릭 교황의 권위처럼 강화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교역자에 대한 존중이나 존경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보다 담임목사님 말씀이나 해석이 점점 더 절대적인 것이 되고 결국 그것이 '진리'처럼 여겨지는 위험이 있습니다. '교황무오론'과 비슷하겠네요.
그리고 신학적, 윤리적, 도덕적 잘못이 있어도 그냥 '은혜롭게(?)'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담임 목사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거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편하겠지만 멀리 보면,
목사, 성도, 그리고 한국 교회 전체를 나쁜 방향으로 이끕니다.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에 자신에게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동역자를 키우는 일은 결국 목사님 자신에게도 좋은 일일 겁니다.
어떻게 보면 교회 세습과, 최근에 감리교 감독 선거와 총회에서 나타난 모습도 교역자의 '절대 권위'가 어느 정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세습을 보면, 결국 그 원인은 이건희님이나 김일성님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공공성을 가볍게 생각했다고나 할까요. '부정(父情)'과 '부정(不正)' 사이?!?
( ☞ 교회세습: http://holynet.info/news/detail.php?number=1319 )
( ☞ 감리교: http://ya-n-ds.tistory.com/44 )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라는 말도 있듯이, 교황권의 절대화가 교회를 어떻게 잘못되게 할 수 있는 지 이미 중세 때 경험해 본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경을 통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는, 사도행전 17장 11절에서 보여주는 베뢰아 사람의 자세가 필요한 때입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고상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실라의 말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였으며, 바울이 한 말이 사실인지를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을 연구했습니다." (쉬운 성경)
성경을 공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바른' 성경공부는 더욱 어려울 겁니다 ( 성경의형성사 ☞ http://ya-n-ds.tistory.com/4 ). 6일 동안 일터와 가정에서 힘든 삶을 산 그리스도인들이, 시간을 내어서 성경을 공부하는 것보다는 그냥 예배 시간에 목사님의 말씀만 듣는 것이 편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교회의 삶과 교회 밖의 삶이 분리되기 쉽습니다. 교회 밖에서는 교회 밖의 규칙과 관행대로, 교회 안에서는 교회에서 요구하는 형식대로. 이런 두 가지 다른 삶의 모습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위선'처럼 보일 겁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꾸짖은 바로 그 모습입니다.
요즘 기독교에 대한 비판은 대부분이 이것 때문이 아닐까요?
한국 교회에 한 가지 더 필요한 것은 '개인적 성화'를 넘어서 '사회적 성화'까지도 이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 ☞ http://ya-n-ds.tistory.com/253 )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부동산 문제나 경제 양극화도 구약 성서를 통해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준 율법의 원리를 법률이나 사회 조직에 적용하면 많이 나아질 수도 있을 겁니다.
( ☞ 성.토.모. http://www.land.kimc.net/ )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종교나 지연, 학연을 떠나서 '공의'와 '정의'라는(아모스 5:24) 하나님 원리에 맞는 정책을 펼 만한 사람을 선택하는 능력을 기른다면, 올바른 사회 변화에도 더 도움을 주고 그 열매를 세상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을 겁니다.
( ☞ 하나님의 정치, http://blog.joins.com/ya_n_ds/10006459 )
하나 더, 한국의 교육에 기독인들이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요즘 아이들을 보면 안타까움이 많을 겁니다. 부모님들도 경제적으로 부담이 많습니다. '경쟁' 위주의 정책 때문이라면 그것이 성경적으로 옳은 것인지를 생각해 보고 정책이 바뀔 수 있도록 교육감 선거 등에 참여하는 지혜를 가져야하지 않을까요?
( ☞ 핀란드, 스웨덴 교육 : http://ya-n-ds.tistory.com/30 )
갈 길이 너무 먼가요? ^^; 하지만 교회를 통해 우공이산(愚公移山)과 우보천리(牛步千里)의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필요한 교회 개혁은, 종교 개혁을 통해서 다시 드러났던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왕같은 제사장: 베드로전서 2:9)'과 '성경'을 다시 소중하게 여기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하게,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겸손하게 사는 것이겠지요.
예수님은 8가지 복을 말씀하신 후,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소금'과 같이 맛을 잃지 않고 '빛'처럼 세상을 밝히는 삶을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바라셨습니다. (마태복음 5:1~13)
팔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가능하겠죠.
'생각대로' 아~니죠(사사기 21:25), '말씀대로' 맞~습니다 ^^
p.s. '루터의 성경을 대하는 태도'라는 글입니다.
http://www.sanletter.net/letter/lastview.asp?mailbox_idx=2453
p.s. “나의 양심은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http://www.iwithjesus.com/news/articleView.html?idxno=4680
p.s. 아이들의 찬송을 통해 잠시 그리스도인로서의 삶을 뒤돌아 봅니다.
< 다르게 살아요 >
다르게 살아가요 예수님 제자답게
내 친구 뭐라해도 다르게 살아요
보는 사람 없어도 하나님이 보세요
정직한 나의 모습 하나님의 자랑이에요
에수님 제자답게 정직하게 당당하게
보는 사람 없어도 정직하게 당당하게
p.s. 이주연 목사님의 종교개혁기념일 묵상...
종교개혁
http://www.sanletter.net/letter/lastview.asp?mailbox_idx=3571
종교개혁 정신
http://www.sanletter.net/letter/lastview.asp?mailbox_idx=35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