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메디아 17기 교육 과정에 있는 피정(避靜) 가는날. 다행히 발이 많이 나아서 갈 수 있습니다.
☞ http://ya-n-ds.tistory.com/3146 ( '좌양말 우깁스' )
아침 감사성찬례
마태 6:24~34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예수님의 강론. 하느님과 재물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21절의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이 있다는 말과 이어지는 거겠죠.
김대묵 신부님은 재물의 자리에 걱정, 두려움을 겹쳐서, 뒷부분에 나오는, 하느님이 자녀의 모든 필요한 것을 알고 있다는 말과,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것과 연결시켜줍니다.
역대하 24:17~25
잠시 여호야다 죽음 전후 요아스의 이야기도 살펴봅니다. 어떻게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에텔드리다 축일. 인터넷 찾아보니 이런 분이네요.
- 영국 동부 작은 왕국의 공주로 독신으로 지내기를 원했지만 부모의 권에 못 이겨 결혼한 후 남편과 사별하기까지 3년간 신방에 들어가지 않고 동정을 지켰다. 다시 영국 북부 지방의 왕자와 결혼했으나 견디다 그를 소신껏 살도록 내보냈다. 그녀는 수도생활을 시작하고 엘리섬으로 가 수도원을 설립하고 거기서 일생을 보냈다. 에텔드리다는 영국의 모든 성녀들 가운데서도 가장 존경을 받는 성녀로서 그를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성당을 축성한 곳이 많다.
애찬시간. 조금 지나니 8시 30분 출발을 위해서 도착한 피정 멤버들 얼굴이 보입니다. 커피와 과일, 토스트 한쪽씩 먹고 차에 오릅니다. 9시쯤 되어 출발. 서울-춘천 고속도로가 막힙니다. 2시간 30분쯤 걸려 수도원 도착.
바로 이어지는 유상신 신부님의 피정 강의. 피정의 의미와 오후에 할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설명.
☞ http://www.stfccm.org/xe/board_catholic/26987 :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묵상기도 방법
두 책에 나오는 얘기로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짚습니다 - '피로사회'(현병철, 문학과지성사), '사랑의 각성'(제럴드 메이, IVP)'
사람들로 하여금 '과잉'을 좇게 만드는 사회에서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착취'하기 쉽습니다. 그 결과는 무한경쟁 속에서 피로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거죠. 그 경쟁을 위해 '효율성에 중독'되고.
이것을 벗어나기 위해 잠시 멈춰 '성찰'이 필요합니다. 피정으 그리스도인들이 가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일터에서는 경쟁이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면, 가정과 교회에서는 어떨까요?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관상기도, 자신에게, 그리고 결국 자신 안의 하느님에게 집중하는 상태. 개신교에서 일부 사람들이 잘못 사용하여 '신비주의' 같은 이상한 것이 되어버렸네요. 공동체 안에서 식별되어 사용되어야 하는데.
이 기도의 목표가 있다면, 결국 나 자신의 '변화'입니다. 결국 희생만이 결국 자기가 속한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거죠.
이론은 배웠는데. 오후에 주어진 짧은 시간에 어떻게 나타날 지 궁금해지고 성령의 도움을 기대합니다.
'피로사회'는 읽어봤는데, '사랑의 각성'은 처음 듣네요.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피로사회에 대한 비판도 있습니다 - 해결 방안을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접근했다는.
☞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5308 : <피로사회>를 경멸하는 이유
점심 시간, 식당 유리벽은 오병이어의 기적 장면을 스테인드 글래스로 표현했습니다.
수사님들이 만들어 준 담백한 식사 - 열무김치, 고구마순 무침, 닭볶음, 홍합을 넣은 미역국. 짜지 않고 맛있습니다.
식사 마치고, 앙증맞게 말린, 성경구절이 적힌 종이를 하나씩 뽑아서 밖으로 나갑니다. 그 구절을 보기도 하고, 주변을 산책하기고 하면서 갖는 개인 산책 시간.
햇빛이 강하네요. 그래도 끈적끈적함이 없어 잠시 마주하기에는 좋습니다.
종이에 적힌 글 - 요한복음 4:13~14
- '예수께서는 "이 우물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겠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 하셨다.'
아침 예배 때 읽었던 부분과 왠지 겹치는 느낌. 요즘 (회사 그만두면) 앞으로 뭘할까라는 생각을 자주하기는 했는데 ㅋ
-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이방인들이 찾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 ( 마태복음 6:31~34 )
이곳저곳 둘러봅니다. 숲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공간, 마음에 와닿기도 하고 아기자기하고 때로는 빙그레 웃음짓게 하는 장식들이 평안을 줍니다.
☞ https://www.facebook.com/thames.young/posts/1763855447015543 : 강촌 성요한 피정의 집
2시에 1층에 모여 '렉시오 디비나' 시간에 대해 한번 더 듣고 각 조로 나뉘어 흩어집니다.
방석 한 개는 비워두고(하느님 자리라는 것을 생각하라는 의미인데 좋습니다) 빙둘러 앉습니다.
잠시 침묵으로 마음을 가라앉힌 뒤, 루가복음 7:36~47을 한 교우가 천천히 읽습니다. 다시 침묵, 그리고 다른 교우가 한번더 읽습니다.
들으면서 그곳에 있었던 예수, 여인, 바리새인 시몬 등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묵상 시간에 나라면 어땠을까, 그곳에 자신을 놓아봅니다. 15분 정도 지난 후에 각자 느낀 것을 나눕니다
- '여인의 눈물', '예수님의 눈길' 등 서로가 느낀 것에 공감. 그리고, 17기 모임에서 필요한 '배려'에까지 이릅니다
- 산책 때 본 각자의 성경구절도 얘기하면서 서로 더 알아가고 친해지네요. 주중이나 주일에 렉시오 디비나 모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오자 카톡에서 해보면 어떨까요로 맞장구
- 빈 방석에 있는 분과 교우들로부터 '토닥토닥', '쓰담쓰담'을 얻는 시간이랄까?
- 아, 시편 127:2절의 경험도 있었습니다 ㅎ "...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사랑하는 자들이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도록 하십니다."
16기 과정에서는 영성에 대한 강의를 듣고 난 후에 피정을 갔는데, 17기는 피정을 먼저 가고 강의를 듣게 되네요. 어떨게 다를까요?
내일 시작하는 양만호 신부님의 '영성' 강의가 기대됩니다.
수사님들이 머무는 공간에서 그분들과 이야기도 하고 구경도 하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을 뒤로 합니다. 다음 기회가 있겠죠.
돌아가는 차에 오르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습니다. 서로에 대한 친밀감도 더 느껴지고.
서울로 가는 길이 막힙니다. 20,30분쯤 가니까 뚫리네요. 서울로 들어와 천호대교를 타니 버스전용차로가 광화문까지 이어집니다. 뭔과 횡재한 듯한... ㅋ
종각 앞 '태극기+성조기' 부대 행렬이 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것을 환영하는 걸까요? 멸공 구호와 함께 십자가도 보이고. ㅎ 박근혜 탄핵 무효, 최순실 태블릿 손석희 조사... 몸은 여기에 있지만 넋은 다른 시간에 갇혀 있는 듯
☞ http://ya-n-ds.tistory.com/2989 ( 어버이연합, etc )
☞ http://ya-n-ds.tistory.com/2675 ( '애국' 기독교 )
도착 한 후 바로 헤어지기가 아쉬워 두 신부님 그리고 두 교우님과 함께 치킨, 소세지, 맥주로 저녁겸해서 먹습니다.
피정 중에 있었던 일들과 앞으로 비아메디아 모임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
작년에 다녀왔던 피정과는 다르네요 - 장소, 사람들, 역할, 그리고 성공회에서 보낸 1년 6개월의 시간...
☞ http://ya-n-ds.tistory.com/2863 ( 5월 오가는 봄 )
6월 24일, 연중 12주일
예수의 길을 예비한 세례자 요한 탄생 축일. 어느덧 예수의 부활을 중심으로 하는 절기가 끝나고, 이제는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때가 시작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달력도 한 해의 반을 넘어가고 있네요. 마음을 여미기에 좋은 시간입니다.
☞ http://viamedia.or.kr/2017/06/24/2782 : 역사의 전환?
비아메디아 영성 강의. 작년 심화과정 때 종교개혁사를 가르쳐주었던 한만호 신부님.
'영성(Spirituality)'의 뜻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영성 하면 생각나는 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수강생들이 '거룩', '고요함', '기도'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대답과 '태도', '라이프 스타일' 같은 일상적인 답변이 나옵니다.
'spirit'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라틴어는 'spiritus', 신약의 헬라어는 'pneuma', 구약의 히브리어는 'ruach'인데, 숨, 바람 등의 뜻이 들어있습니다. 이것을 토대로 교재에서는 영성을 '우리의 일상에 하느님의 생기 곧 성령을 불어넣는 일'이라고 표현합니다.
나만의 방식으로 좀더 줄여보면, 'Aliveness to/with/by God', '하느님에게(과 함께,에 의해) 살아있음' 정도가 될 수 있겠네요? ㅎ
'spirit'에 재미있었던 내용 - s가 붙어 복수형이 되면 술의 뜻을 가진다네요. 술의신 바쿠스를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ㅎ
교회사적으로 볼 때 종교개혁의 영성은,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체험과 위로 자체보다는 그 과정을 통해 보여주는 삶의 태도와 행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칼뱅은 '한 사람이 일생에서 보여주는 삶의 열매가 그가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았다고 증거가 될 수 있다'고 했다네요.
칼뱅의 이신칭의 교리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한국보수 개신교회에서 일반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과는 조금 결이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신비로움'이 깃들여 있어야할 '영성'을 '태도'라는 관점에서 정의를 해서 그런지 조별 토론과 그 이후에 이어진 Q&A 시간에 많은 말들이 오갔습니다. '신비 체험', '병고침', '기도 응답', '카리스마' 등등은 영성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하는 질문들도 나오고.
이런 물음에 스스로 대답을 해봅니다.
개인적인 경험의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통해 공동체 안에서 덕이 쌓이는 것까지를 '영성'의 범위로 생각하면 되는 걸까?
바울은 자신이 많은 체험을 했지만 굳이 그것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의 서신을 보면 예수를 주님으로 받아들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강조합니다.
복음서에서도 예수가 자라는 모습에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은 이야기가 들어가 있습니다.
"이러한 정신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은 하느님을 기쁘게 하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습니다." ( 로마 14:18 )
"예수는 몸과 지혜가 날로 자라면서 하느님과 사람의 총애를 더욱 많이 받게 되었다." ( 루가 2:52 )
바울이 말하는 성령의 열매도 '사람을 향한' 태도들입니다. 그리고, 고린도인에게 보낸 첫번째 편지 12장에서 여러 은사를 이야기하지만, 가장 큰 은총은 사랑이라고 하면서 13장의 설명을 이어갑니다.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이것을 금하는 법은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5:22,23 )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 고린도전서 13장 )
예수님도 나무는 그 열매로 안다고 했습니다.
"너희는 행위를 보고 그들을 알게 될 것이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딸 수 있으며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딸 수 있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게 마련이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모두 찍혀 불에 던져진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 행위를 보아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 마태 7:16~20 )
예수님이 만약 한국보수개신교에서 설교를 한다면 알미니안주의자로 몰릴 수도 있겠네요 ㅋ
좋은 인격과 품성을 가진 사람들은 기독교인이 아니더라고 삶의 태도는 칭찬받을 수 있는데 이럴 경우 '영성'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는 물음도 흥미로왔습니다.
신부님은 요즘 '영성'이란 말이 보편적으로 쓰이기 때문에, '** 영성'처럼 앞에 수식어를 붙여 사용해야 의미가 구체화 된다고 대답합니다. 그래서인지 강의 교재도, '1. 태도로서의 영성', '2. 성공회 영상의 특징'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아, 요즘 트렌드 중 하나가, 'No Religion, Yes Spirituality'라는 얘기도 덧붙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성령과 함께 살면('영성'이 좋으면) 좋은 행동이 나타난다'. 이 말이 참이라고 하면, '좋은 행동이 나타나면 성령과 함께 살고 있다'는 참일까요? 논리에서 역명제는 항상 맞는 것은 아닙니다.
'나쁜 행동이 나타나면 성령과 함께 살고 있지 않다('영성'이 나쁘다)'는 어떨까요? 원래의 명제가 옳으면 대우명제는 항상 옳습니다.
삶에서 '나쁜 열매'가 나타나면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하고, '좋은 열매'가 있더라도 '열매부심' 갖지 않아야겠습니다.
신부님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리고 기준으로 삼는 '영성'의 모습은 '겸손'이라고 하면서 강의를 마무리짓습니다. 다음주 강의가 기대됩니다.
음... 오는 한주 동안 일터에서 나의 태도는 어떨까요, 좀더 신경을 쓰고 살아봐야겠습니다.
p.s. 올해 6월 25일은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북미정상회담 이후 화해분위기 때문일까요, 북한에서도 연례행사였던 반미집회를 하지않았다고 합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영성'은 무엇일까요?
☞ http://ya-n-ds.tistory.com/776 ( 한국전쟁 & 정전 )
p.s. 6월의 마지막 주, 성인 축일이 많네요. 이분들은 어떤 '영성'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 알렉산드리아의 키릴(27일)
https://namu.wiki/w/%EC%B9%98%EB%A6%B4%EB%A1%9C
☞ 이레네우스(28일)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B%A0%88%EB%84%A4%EC%98%A4
☞ http://regnumdei.tistory.com : Regnum Dei intra vos
p.s. 7월 1일, '영성' 강의 두번째 시간. 오늘은 기도에 대해 듣습니다. 먼저 '하느님', '기도'에 대해서 각자가 생각하는 것을 하나씩 말해보고 그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봅니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하느님'에 대한 이미지는 결국 '기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신부님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동방정교회에서 내려오는 교부들의 어록이라고 할 수 있는 '필로칼리아'에서는, '기도'를 자기 생각을 버리는 것, 자기 생각과 멀어지는 것이라고 한다네요. 자기 생각에 머물러 있으면 다른 것을 보고 들을 수가 없겠네요 -
- '視而不見 聽而不聞 (시이불견 청이불문)'(대학 전7장)
-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 마태 13:9,14 )
기도에 대해 '침묵'하는 듯한 하느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계속 질문을 이어가게 한다는 말도 마음에 남습니다.
※ 생활의발견 다른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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