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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과 다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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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패 달고 보니까 넘 커다란 이름이네요 ^^; 행여 고래 등 사이에 끼인 새우가 되지 않기를 ㅎㅎ 연암은 고미숙님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에서, 다산은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에서 삘 받았슴다. 잼난 놀이터가 되었으면... ^^
by 명랑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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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23:35

사람을 소개 받을 때, 먼저 그사람의 간략한 프로필을 보고 어떤 사람인지 가늠해봅니다. 만나다 보면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되죠. 말과 행동의 배경과 상황을 통해 이해하고 이전에 가졌던 생각을 고쳐갑니다. 
성서와의 만남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성서가 대략 어떤 책인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아 본 후, 직접 읽어보면서 처음 가졌던 생각과 다른 이야기들과 마주치며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할까 고민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에 도움이 될 만한 책 세 권이 있습니다. 
- '성서의 형성', 성서의 구성과 어떤 과정으로 모아졌는지를 알려줍니다. 
- '성서와 만나다', 성서 내용 중에 현재의 상식이나 가치관과 맞지 않은 부분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창세기와 만나다', 수 천년에 걸쳐 사람들이 성서의 첫번째 책인 창세기를 어떻게 해석했고, 그것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책들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가졌던 생각을 돌아보고, 다시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네요. 교우님들과 함께 읽고 성서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나누어 보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 <성서와 만나다> ( 존 폴킹혼, 비아 ) 

성서를 읽다보면 서로 맞지 않은 부분들과 종종 마주칩니다. 구약 성서에서 예를 들면, 서로 다르게 창조를 이야기하는 창세기 1장과 2장, 한 쪽에서는 하느님이 이스라엘 민족의 배타적인 신으로 그려지고 다른 곳에서는 모든 민족을 구원할 신으로 나오는 것들입니다. 
저자는 이것을 '성서의 모호성'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오히려 이 때문에 성서가 '답정너' 책이 되지 않고, 풍부한 해석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하느님에 대한 경험이 넓어지며 하느님에 대한 생각이 발전했고, 구약을 편집한 사람들은, 하나의 '통일된' 이야기 책을 만들기보다는 여러 시대에 걸쳐 살아 남은 이야기들을 모두 담았다는 것입니다. 

복음서들에서는 같은 사건에 대해 디테일이 다른 부분, 신약 성경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는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설명들도 좀더 유연하게 성경을 볼 수 있게 해주네요. 
예수가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임을 선포하기 위해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구약을 인용, 변형하는 것도, 하나의 의미만을 고집하기 쉬운 근본주의나 문자주의에서 벗어나서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길을 보여줍니다. 이전에 몇몇 신약 성경의 구약 인용 구절을 보면서, 구약에서의 맥락은 이게 아닌데 왜 여기에다 가져다 놓았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자연스러운 것이였네요. 

책의 마지막 장 '물리학자로서 읽는 성서'는, 자연과학자 출신의 저자가, 성경을 통해 우주/자연의 진화 속에서 인간의 정체성, 창조의 완성 등을 생각해보는 독특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우님들과 이 책을 함께 읽으면서 각자가 가졌던 성경에 대한 생각을 나눠보면 재미있을 것 같네요,


## <성서의 형성> (존 버턴, 비아) 

'성서와 만나다'(존 폴킹혼, 비아)를 포스팅했는데, 페친이 비교해보라고 댓글로 소개. 현재 우리가 보는 성서가 만들어진 과정을 정리해 놓은 책입니다. 

4가지 관점에서 성서를 소개합니다. 
1) 책들을 누가 썼는가  2) 어떻게, 누가 모았는가?  3) 책이 어떻게 경전이 되었나?  4) 어떻게 정경으로 확정되었는가? 

흥미있게 다가온 내용을 간추려 보면, 
- 책이 권위를 인정 받아 '경전'이 되는 특징들 : 
  -> 성서의 저자들이 자주 인용 
  -> 원저자가 예언자, 사도 등과 같이 유대교, 그리스도교에서 중요한 사람이 썼다는 인식
      => 어떤 경전들은, 저자로 알려진 사람이 실제로 쓰지 않고, 누군가가 이름을 빌려썼다고 연구됨 
  -> 저술연대 : 구약(히브리 경전)의 저자들이 예언자라면, 에즈라 시대 이후 예언이 멈추었다면, 5세기말 이전에 모두 완성되어야 함 
  -> 보편성 :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 유효함. 이를 위해 본문의 특수성을 감소시키는 방법 필요. 예를 들면, 바울이 지역 교회에 보낸 편지가 단지 그 교회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에 보낸 것과 같다고 생각. 
  -> 현재유효성 : 모든 상황에서 언제나 유효하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적용가능하다고 믿음 (신약의 저자들이 구약을 인용해서 사용한 것처럼). 보편성의 연장 개념?

- 정경화(canonisation) : 권위를 인정 받아 경전이 되는 것과 정경의 목록에 들어가는 것을 구분해야 함. 목록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초기 그리스도교 저자들이 경전을 인용했음. 

- 신약에 해당되는 책들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두루마리 대신 코덱스(현재의 책과 같은 형태)를 사용해서 기록했기 때문에, 책들의 순서가 변화된 것을 파악하기 쉽다. 

- 구약 성경 목록 : 
  -> 히브리 성서 : 유대인들이 정경으로 여기는 목록을 처음 문서로 기록한 요세푸스의 기준은 오직 저술 연대 - 아르타크세르크세스(기원전 5세기 말 에즈라가 살던 시대의 페르시아 왕) 이전에 쓰여졌는가? 
  -> 그리스어로 번역된 70인역이(외경이 포함됨), 유대교에서 사용하는 히브리성서 목록보다 길다. 
  -> 구약을 라틴어로 번역한 히에로니무스((345~420)는 짧은 히브리성서 목록을 따라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70인역에 포함된 '외경'도 따로 라틴어로 번역 
  -> 교부 아타나시우스(296~373)도 짧은 히브리성서 목록을 지지했지만, 외경을 즐겨 인용 
  ->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70인역의 긴 히브리성서 목록 지지. 종교개혁 이전까지 서방교회의 공식 입장이 됨
  -> 개신교 개혁자 : 짧은 히브리성서 목록 지지. 70인역에서 외경을 빼고 사용하므로, 순서는 히브리 성서와 다름. 성공회와 루터교는 외경도 사용. 

- 신약 성경 목록 : 
  -> 신약의 '정경' 목록을 처음 기록한 사람은 영지주의에 영향을 받은 마르키온(85~160) 
  -> 4세기 에우세비우스와 아타나시우스가 목록 제시. 아타나시우스의 목록이 현재의 신약성경과 같음   
  -> 초기에 4복음서의 순서는 일정하지 않음(다양한 기준). 예를 들면, 마태/요한복음 사도들이 쓴 것이고 하여 앞에 두고, 마르코/루가복음은 '사도들의 제자'들이 쓴 것이라고 하여 뒤에 둠 
  -> 에우세비우스(260~380)가 저술 연대를 근거로 마태/마르/루가/요한 순서로 나열 
  -> 초기 신약 성서 순서 : 복음서-바울서신-사도행전-공동서신(야고보/베드로/요한/유다의 편지) 
  -> 차이점을 보이는 4개의 복음서를 모두 정경화하는 것을 꺼려했던 초기 그리스도교인들도 있었음 (복음은 일관성 있는 '하나'만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 그래서 마르키온은 루가 복음만이 참된 것이라고 주장했고, 타티아누스는 150~160년경  '디아테사론'이라는 4복음서의 발췌합본을 만듦. 

성경을 이루는 책들과 순서가 정해지는 과정과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이 그것들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살펴보면서, 좀더 자유롭게 힘을 빼고 성서를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면 좋겠네요. 


p.s. 아쉬운 점 한 가지: 유대교, 70인역, 카톨릭, 개신교 성서 목록을 함께 비교하는 표가 부록으로 있었으면.

p.s. 오래 전에 읽었던 비슷한 책 기억도 새록새록~ 
-> https://ya-n-ds.tistory.com/4 ( '성경의 형성사' (박창환, 대한기독교서회) ) 



## <창세기와 만나다> ( 로널드 헨델, 비아 ) 


'신학의 영토들'(김진혁, 비아) 읽다가 알게 된 책. 원작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세상과 영향을 주고 받는 '사후 생애' 관점에서 창세기 해석의 역사를 돌아보네요. 
전환점이 된 문서들을 하나씩 소개하면서, 각 시대의 창세기 읽기를 알려주는데, 나의 해석은 어디쯤일까 생각해 봅니다. 

변화의 과정을 살펴보면, 
1. 창세기 해석의 가정 : a. 비밀을 간직한  b. 현재에도 유효한  c. 완벽한  d. 신성한 
-> 현실과 맞지 않은 구절들에 대해 '우의(allegory)', '상징' 등을 가지고 해석해서 불일치 조화(합리화)시킴 
2. 종말론적 해석 
- 유대인들은 종말에 처음 창조되었을 때의 아담의 영광을 얻을 것으로(에세네파),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통해 아담의 영광을 얻을 것으로 기대 
3. 플라톤적 해석 (이원론) 
- 창세기 그리스어 역본에 플라톤의 언어를 사용함으로 그리스 개념과 히브리 개념을 조화시키려고 함 
- 필론 : '창세기 주석'. 성서 본문에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 - "율법의 내용은 보이지 않는 것의 보이는 상징이며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한 상징이다" 
  '우의적 해석(allegorical interpretation)'을 통해 창세기의 문제점들을 해결하려고 함. 예를 들면, 창세기에 나오는 두 번의 창조는, 첫 번째는 이상적인 형상에서 일었고, 두 번째는 물질세계에서 일어난 것 
- 바울 : 플라톤 사상의 언어 및 개념 사용 (예를 들면, 로마 1;19~20, 갈라 4:24~26) 
- 영지주의 : '요한의 비밀 계시록' - 도덕적으로 대립하는 물질 세계와 이상 세계. 완벽한 신은 천상에서 완벽한 인간인 아담을 창조하고, 불완전한 신은(얄다바오트) 아래 세계에서 하위이 아담을 만듦
- 사막 교부 : 고행을 통해 자신의 물질적 본성과 싸워 천사와 같은 최초 아담의 빛나는 몸 회복 
4. 아우구스티누스 : 종말론적/플라톤적 의미의 상징적 의미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성서의 문자적인 의미도 진리로 받아들임 
   cf. 필론, 오리게네스 : 문자적인 의미가 이성과 부딪힐 때 그 의미의 진실성을 부정하고 상징적 해석 채택 
5. 11세기까지 상징적 해석이 주류가 되고, 상징이 남용되는 오류들 발생 
   -> 예를 들면, 창세기 1장의 두 큰 빛을 교황권과 왕권으로 해석 (이노첸시오 3세) 
6. 솔로몬 벤 이사악(='라쉬', 유대인 랍비) : '창세기 주석'(1075년 경) '문자 그대로의 의미(페샤트)' 중시. 히브리어 문법, 문맥 고려한 분석에 초점 - "미드라쉬 해석이 있지만, 이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 적절하지 않다" 
   cf. 원칙은 '문자주의(사실주의)'로 상징의 남용에 대응하지만, 필요에 따라 종말론적/플라톤적 상징 받아들임 
7. 마르틴 루터 :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수도사. 상징주의 해석에서, 이성을 통한 문자주의 해석으로 전향. 성경의 권위를 우선시함. 상징주의 해석으로 남용되는 교황권/공의회의 권위에 저항. '창세기 강해'(1535~1545년) 
"이해하지 못한다면 왜곡하지 말고 이해의 부족함을 고백하라"('창세기 강해' 1:5) 

cf. 한계 : 성경을 '역사적 사실'로(예를 들면 '에덴동산') 생각. '오직 성서'/'오직  믿음'/'만인사제직'과  성서 해석 권위를 '성령의 영감'에 두어 개인주의 신앙의 길을 열음. '에덴동산'에 부축적, 사유재산, 군주제가 없다는 해석의 농민반란(1524년)에 대해 반대. 

8. 프랑수와 라블레(의사, 전 베네딕토회 수도사) : '팡타그뤼엘' (1532년) 창세기 패러디하여 가식적인 신앙 비판. 1534년 금서가 됨

=> '비밀간직한', '현재에도 유효한', '완벽한' 성서라는 가정이 깨짐 

 

9. 갈릴레오 갈릴레이 :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 이론을 망원경 관측으로 증명. 성서는 인간의 제한된 지성에 맞추어 이야기하므로, 과학과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문자적 의미가 실제 경험과 맞지 않으면, 상징주의 해석을 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해석과 비슷). 하지만 문자주의 해석의 성서 세계관과 어긋난다고 하여 1633년 종교재판에서 유죄 받음 
10, 스피노자(네덜란드계 유대인) : '신학-정치론'(1670년). 갈릴레오 방법론을 사용하여, 종교/이성, 성서/과학을 분리하여 성서 해석. 역사, 문화, 정치, 저자 의도, 언어, 본문 등을 통해, 신의 개입을 배체하고 성서을 연구하는 역사비평 방법론을 사용하여 성서를 '자연화'함. 신학자들의 성서권위 남용에 저항하여, 언론/종교의 자유 통한 민주주의 추구. 
=> '신성한' 성서라는 마지막 가정이 깨짐 

11. 신대륙 발견 : 다양한 종족이 발견되어 성서의 '민족 목록'과 맞지 않음. 성서와 조화시키려는 다양한 이론이 등장했으나 곧 힘을 잃음. 
12. 지질학 : 오래된 지구의 나이와 성서를 맞추기 위한 이론들이 나옴 
- 'day-age' 이론(1813년) : 창세기 1장의 하루가 한 '시대'에 해당한다고 해석 
- 'gap theory' 이론(1814년) : 창세기 1장, 2장이 두 번의 창조를 이야기하고 그 사이에 긴 시간이 있었다고 해석 
=> 여기까지는 성서와 과학을 맞춰보려는 의도와 노력 

13. '종의 기원'(1859년) : 모든 생명체가 신적 개입 없이 자연적인 진화 과정으로 진화. 과학과 창세기가 더이상 문자적으로 양립할 수 없게 됨. 
14. 'Essays & Reviews'(1860년) : 성서학계의 성과 모음. 성서는 '과학'이 아니라 '위대한 도덕적 진리'로 생각 

15. '14개 조항 신조'(나이아가라 신조)(1878년) : 미국 복음주의 개신교에서 성서학과 진화론에 맞서 만듦. 성서 원본의 모든 단어와 문법적 세부사항까지 하느님의 영감을 받았고, 오류가 없다 -> 개신교 근본주의자들과 복음주의자들의 특징이 됨. 

cf. '장로교 평론'(1881년) : 성서무오설 
cf. '근본 진리에 대한 증언'(1910~1915년) :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라는 말이 나옴 -> "창세기를 마치 과학 논문처럼... 본질적이고 참되고 정확한 명제들의 집합체로 취급"(조지 마스든) 


16. 미국 남북전쟁 때의 창세기 해석 
- 노예 제도 정당화 : 창세기 9장의 노아 이야기(함의 아들인 가나안이 저주를 받음)의 저주 대상을,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 정착한 함의 다른 아들들(구스, 미스라임, 붓 - 에티오피아, 이집트, 리비야)에게까지 확대해서 흑인 노예의 근거로 삼음 
- 링컨 : 창세기 3:19절의 아담에 대한 저주(땀을 흘려야 빵을 먹을 수 있음)를 재구성해서, 노예 제도가 '다른 사람이 땀을 흘려서 힘들게 얻은 빵을 빼앗는 행위'라고 비판 
- 노예제도 폐지론자 : 창세기 1:26,27를 근거로 인종, 성별을 불문하고 인간 평등의 원리를 표현한다고 함. 신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되 둘 다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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