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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과 다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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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패 달고 보니까 넘 커다란 이름이네요 ^^; 행여 고래 등 사이에 끼인 새우가 되지 않기를 ㅎㅎ 연암은 고미숙님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에서, 다산은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에서 삘 받았슴다. 잼난 놀이터가 되었으면... ^^
by 명랑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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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13:33

많은 사람이 알지만 읽은 사람은 드물 때, 그 책을 '고전'이라고 한다죠. 저도 '자유론'이 고전이 되는 데 그동안 일조를 했네요 ㅎ 

유시민님이 시사 평론 관련 활동을 그만둔다고 하고, 새롭게 시작한 '알릴레오 북s', 좋은 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공유하려나 봅니다. 그 첫번째 책이 '자유론'(존 스튜어트 밀)입니다. 
☞ https://youtu.be/qLC6IgEQxYA : 자유론 (상)
☞ https://youtu.be/R1PUPZIRG80 : 자유론 (하)

무엇이든 '처음'은 의미가 있죠. 읽어 보니 고개가 끄덕이게 됩니다. 다양한 사람이 어울려 살아야 할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개인의 자유이고, 또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인정하는 덕목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한 사회가 획일적인 틀로 정체되지 않기 위해서는 새로운 생각의 포용이 요구됩니다. 

어쩌면 조직을 위해 가장 생각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종교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오히려  "너희가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이다. 그러면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1,32)라고 말하지만. 
그래서인지 기독교(영국이니까 성공회를 주로 염두에 두었겠죠?)에게 질문하는 형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하는 것이 곳곳에 보입니다. 
- Destitute of faith, but/and terrified at sceptism 
- 당신은 아 신조들이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할 만큼 확실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 당신은 신에 대한 믿음에 확신을 가지는 것이 무오류성을 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가? 
- 모든 사람이 당연하다고 생각 하게 되면 교회에는 전례서만이 남는다 

얇지만 묵직한 책이네요, 시대를 많이 앞선. 특히 사상의 자유를 넘어 개성 자체를 중요하게 여긴 것도 눈길을 끕니다.  

읽다 보니, 기독교 관련 두 글이 떠오릅니다. 
-  '비잔틴 신학' (존 메이엔도르프, 정교회출판사). 처음에는 영지주의 등 초기 이단에 맞서, 그 후에는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 신학에 대해 자신들의 믿음을 끊임없이 돌아보고 새롭게 정의해 나간 비잔틴(동방교회) 신학을 이야기한 책. 그때는 사용하는 용어 하나하나에도 믿음의 생생함이 들어 있었겠죠. 그리고 끊임 없이 새로와졌을 거고.  
- '2019 Underwood Lecture' ( Sarah Coakley ). 기도, 욕망, 성(gender)의 관계를 통해 기독교에서 터부시했던 '욕망'이 기도의 출발점일 수 있고 성령 안에서 어떻게 변화되고 하느님의 '욕망'과 통합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개인의 감정(개성)이 교회를 풍성하게 할 수도 있겠네요. 

이런 생각들이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할 사회에서, 지켜야 할 본질적인 것과 세상의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비본질적인 것을 분별할 수 있게 해서, 교회를 좀더 유연하게 만들고 예수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하느님나라의 가치를 세상에 더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점점 더 근본주의가 되는 듯한 한국 보수 개신교 대형교회 목사님들이나 교인들이 '자유론'을 읽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고립되지 않고 복음을 세상에 전하고 싶다면... 


어쨌던 개인적으로는 '고전' 목록에서 하나가 지워졌습니다.  

 

책 하나가 더 생각납니다, '성공회 신학'(마크 채프만, 비아). 헨리8세의 '욕망'에서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는 성공회, 그 이후 왕의 종교적 성향에 따라 프로테스탄트와 로마카톨릭 사이를 오가며 영국에 피가 흘렀죠. 그런 아픔을 겪었기에 어쩌면 중도, 포용의 가치가 신학에 스며들었을 수도 있겠네요. 이런 과정 속에서 신앙의 의미들이 새로와졌겠죠. 
지금은 어떨까요? 혹시 '전례서'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닌지 늘 돌아봐야겠네요.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를 이어 받은 로마카톨릭의 신학, (동방교회와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책도 하나 읽고 싶네요. 서방교회에도 메이엔도르프나 채프만 같은 신학자가 있겠죠? 

 

p.s. 2019 Underwood Lecture;

☞ http://saemoonan.org/Board/ViewTV.aspx?vodType=5&isPastor=&idx=75217 : 1강 - 기도, 욕망, 성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탐구
☞ http://saemoonan.org/Board/ViewTV.aspx?vodType=5&isPastor=&idx=75218 : 2강 - 기도, 삼위일체의 근원
☞ http://saemoonan.org/Board/ViewTV.aspx?vodType=5&isPastor=&idx=75219 : 3강 - 고전적 삼위일체론의 기도, 욕망, 성의 관계와 오늘날의 함의 

 

p.s. '비잔틴 신학', 성공회에 와서 궁금증이 생겼던, 전례교회의 직제와 예식이 만들어진 신학적, 역사적 배경의 힌트를 덤으로 얻을 수 있었네요 ㅎ

 

p.s. 이종민 신부님이 얼마 전에 페북에 올렸던 글도,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현실에 잘 맞지 않는 직제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찾는 고민의 흔적이겠네요. 겠죠. 
☞ https://www.facebook.com/jongmin.lee.7967/posts/4037962996258951 : 한 후배의 부제 서품을 보며 느낀 것은 

 

p.s. < 공의회, 역사를 걷다 > ( 최종원, 비아토르 )  

☞  https://www.facebook.com/thames.young/posts/pfbid029qQhrD5MtaDi1Dh2bpGip348j4GyD5DueaKYjkjw3vALXmhV1jLYQP2fWtGxYZY6l   

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1712 : 잃어버린 '전통'을 찾아서 

 


※ '생활의발견' 다른 글 보기
☞ http://ya-n-ds.tistory.com/tag/생활의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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