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스트레스가 예전과 다르게 점점 커지는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해야 할 일이 넘 많아져 버렸습니다. 선행 학습이 일반화되면서, 예전에 12년 동안 배워야 할 것을 10~11년 정도에 배워야 그나마 '좋은' 학교에 들어갈 가능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
이런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교회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2종 세트를 발견했습니다.
사랑의 교회에서 '청소년, 어린이 교육위원회'를 섬기는 박성은 목사님과,
'소년부(초등학교 5,6학년)'를 돌보는 홍진기 목사님의 글입니다.
두 분의 도움으로 여기에 올립니다.
* 예배는 나의 피난처입니다 : 홍진기 목사님 jkhong@sarang.org
“피난처 있으니 환란을 당한 자 이리오라.”
주일 아침!! 오늘도 거의 전쟁과 같은 - 첫째는 복잡한 소망관 예배 장소 때문에, 둘째는 예배를 방해하는 많은 영적 세력들 때문에 - 주일예배가 시작되기 30분 전이다. 요즘 유난히 주일 아침마다 이 찬송가가 가슴 깊이 파고든다. 한 주간 나름(?)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살다가 예배당으로 찾아와 힘없이 앉아 예배의 시작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가슴이 짠~하다. 이 짠~한 가슴을 안고 잠시 간절히 기도(Spot pray)한다. “주여, 이 아이들이 오늘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을 얻어 나가게 하옵소서.”
설악산이나 지리산과 같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높은 산에는 꼭 산 중턱에 대피소라는 곳이 있다. 대피소는 등산객들이 해가진 후 미처 하산하지 못했을 때라든지 또는 예상치 못한 험한 날씨를 만났을 때와 같은 상황에 대비해 만들어 놓은 곳이다. 어두운 산길이나 눈보라 속을 헤매다가 만나게 되는 대피소 불빛은 거의 구세주와 같다.
예배에 대한 정의는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예배는 나의 피난처이다.”라는 내 나름대로의 정의가 유난히 마음 깊이 다가오는 것은 요즘 우리 아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내, 외부적 상황이 그렇게 느끼도록 만드는 것 같다.
생각보다 우리 아이들은 꽤 깊은 고민들을 하고 있다. 또한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많은 절망들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 고민과 절망은 흉터로 남게 된다. 깊은 회복이 필요한 건 비단 어른들 뿐 만이 아니다.
회복과 새 힘이 매주일 필요한 우리 아이들에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피난처는 오직 예배뿐이다. 예배를 통해서만이 근본적인 고민이 해결될 수 있다. 예배를 통해서만이 근본적인 절망에서 회복될 수 있다. 오직 예배를 통해서만 근본적인 새 힘을 얻을 수 있다. 예배 가운데서 “만유 주 여호와 우리를 도우니 피난처요”라며 고백하는 찬송처럼 만유의 주님을 만나야 한다. 예배를 마치고 예배실을 나왔을 때 상황은 여전히 전혀 달라져 있지 않지만 예배 때 하나님을 만난 아이들을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마치 지친 몸으로 세찬 눈보라 속을 걷다가 대피소에서 따뜻한 음식을 먹고, 따뜻하게 데워진 옷을 입고 힘을 얻어 다시 세찬 눈보라 속을 향해 힘차게 문을 열고 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할 일이 무엇인가? 우리 아이들에게 예배를 통해 이 하나님을 만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예배는 유일한 너희의 피난처임을 스스로 알고,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주일 아침 주일학교 예배실에 아이를 들여보내면서 “재미있게 놀고 있어.-또는 선생님 말 잘 듣고 말썽부리지 말고 조용히 있어.-엄마, 아빠 예배드리고 올게” 라고 손을 흔들며 떠나는 부모님을 볼 때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다. 가장 가까운 부모라도 전혀 할 수 없는 그것들을 하나님이 해 주시길 정말 간절히 기도하며 내 아이를 예배실로 들여보내야 한다.
이러한 예배는 사정 있으면 빠져도 되는 것이 아니다. 잠시 놀다 올 놀이터는 사정 있으면 빠져도 되지만 예배는 아니다. 어디에서든지, 어떤 방법으로든지 주님이 우리에게 정해주신 특별한 날인 주일에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이것이 내 아이가 사는 길이다.
찬송가 79장(피난처 있으니)의 가사를 깊이 묵상해 보자. 그리고 매 절마다 찬송하는 그 하나님을 내 아이가 예배 때마다 만난다는 거룩한 상상을 해 보자. 그러면 자동적으로 내 아이의 미래가 그려질 것이다. 이 일은 오직 예배 안에서만 일어난다.
이러한 예배를 간절히 고대하며 기도한다.
“주여! 오늘 예배를 살려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 아이들에게 은혜를 주시옵소서.”
“주여! 도와 주시옵소서!”
* 탁월한 교사를 보강하라! : 박성은 목사님 separk@sarang.org
파레토 법칙(Pareto principle)을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파레토 법칙이란 '이탈리아 인구의 20%가 이탈리아 전체 부의 80%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것을 ‘2대8 법칙’이라고도 한다. 전체 결과의 80%는 전체 원인의 20%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것을 경영학에 적용하여 한 기업의 전체 매출의 80%는 인력의 핵심 20%에 의해서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기업에서는 유능한 20%의 능력 있는 인재를 찾는데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잘 준비되고 열정을 가진 교사에 의해 아이들의 변화 80%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기독교 교육의 성패는 얼마나 좋은 교사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판가름 난다. 사랑의교회 주일학교는 어떠한가? 다행히 사랑의교회는 평신도 지도자들을 제자훈련으로 세워 많은 평신도 지도자들이 교사로 섬기고 있다. 이들은 각 부서마다 다음세대를 말씀으로 세우는 ‘반 담임’으로, 연약한 교사들을 영적으로 돌보는 ‘순장 교사’로, 은사 별로 행정 조직을 개편한 각 영역의 스탭으로 배치되어 주일학교의 영적 기후를 조절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훈련을 받은 순장급 교사는 전체 교사 비율로 보면 22%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이 비율은 제자훈련을 모토로 하는 우리 교회에서는 부끄러운 숫자이다. 평신도 지도자들을 세워 수평적인 세대를 섬기는 데는 열심인데 수직적인 다음세대를 세우는데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30년 이후에도 지금의 영향력으로 사랑의교회가 한국과 세계 교회에 쓰임 받기 위해서는 정책적인 접근이 필요한 대목이다.
주일학교의 교사 수급 체계와 훈련도 미흡한 편이다. 사랑의교회에 6개월 이상만 출석하게 되면 부서 사역자의 면담으로 교사로 섬길 수 있다. 물론 교사훈련원에서 1년 동안 기본 훈련을 받도록 유도하고는 있지만 완벽하게 정착하진 못하고 있다. 다락방에 순장으로 섬기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의 검증과정과 훈련을 거쳐야 한다. 그렇다면 가정과 교회, 사회를 책임질 다음세대 영혼들을 빚는 교사도 여기에 준하는 열정과 헌신, 훈련이 요구되어야 한다. 또한 은사 별로 다양한 교사 훈련들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 기능적으로 교사로 섬기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주일학교 전문 사역자의 부재도 우리의 상황을 어렵게 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구조가 성인목회 중심이고, 주일학교 사역은 성인사역을 위한 징검다리로 생각하게 만든다. 아이들은 성인사역을 준비하기 위한 실험 대상이 아니다. 한 영혼, 한 영혼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진 존귀한 작품이다. 하늘 아버지의 심정으로 다음세대를 책임질 전문가들이 지속적인 사역을 감당하도록 사역 환경을 만드는 것도 사랑의교회가 해야 할 몫이라 생각한다.
교사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직접 명령하여 세우셨고, 역할과 임무까지 상세하게 지시한 거룩한 직분이다(엡 4:11-12). 왜냐하면 교사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람의 영혼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랑의교회 주일학교는 아이들의 영혼에게 미친 전문 사역자가 마음껏 사역하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탁월한 교사가 세워지는데 필요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세상을 책임지는 예수님의 제자로 다음세대를 세우는데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올 해도 여전히 교사가 부족한 상황이다. 사랑의교회 주일학교 교사 모집은 정시 모집이 아니다. 수시 모집이다. 아이들에게 영적인 부담을 가지고 미래에 투자하기 원한다면 지금, 당장 교사로 지원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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