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무렵 1주일 정도 찬바람과 함께 1월이 갑니다. 겨울도 가나요?
새해 첫달을 돌아보니 여러 생각들이 오갑니다.
1월 12일(배ㅎㅈ), 13일(오ㅌㅎ) 연속으로 있는 반 아이들 생일. 축하 롤링 페이퍼 쓰라고 했는데, 이름을 모른다네요 ^^;
전체 60명 정도의 부서라서 아이들이 이름을 어느 정도 알 줄 알았는데 자기 학년 빼고는 잘 모르네요.
하긴 예배 드리고 10분 정도 머물다 떠나가니까 같은 반을 하지 않으면 모르겠네요.
첫주에 하는 '이름 알아가기' 게임을, 정신이 없어서 못했네요. 한번은 시간내서 해야할 듯~
아이들 역할 분담은, '간식 쓰레기 치우기'에서 '간식 쓰레기 치우게 하기'로 바꾸어 홍ㅅㅇ가 하기로.
예배 끝나고 반별 시간에 조샘이 만든 맛있는(저는 무려 3번이나 먹었네요 ^^) 떡볶이를 먹을 때 실력 발휘. 책상이 깨끗하네요.
아침에 아이들에게 성경 구절 챙겨주는 것은 하려고 하지 않네요. 역할 정할 때 결석했던 오ㅌㅎ에게 얘기했는데 자기에게 딱 맞는 일이라고 하면서 흔쾌하게 수락 ㅎㅎ
빨리 다가오는 반 담당 예배 기도를 위해 사다리를 탔습니다. 미리 그려 놓은 종이 위에 각자가 이름을 쓰고 내려가기 시작.
'띠리띠리 띠딩~'하면서 게임기 소리 흉내를 내면서 했더니 아이들이 매우 흥미롭게 보네요. 자기 이름을 탈 때는 '제발 뒷 번호 되라'하는 주문도 걸어보고 ㅋㅋ
순서가 정해졌습니다. 이ㅅㅎ, 정ㅎㅇ, 김ㅌㅇ, 홍ㅅㅇ, 오ㅌㅎ, 김ㄷㅎ, 김ㅊㅎ, 김ㅌㅇ, 배ㅎㅈ, 류ㅈㅎ, 윤ㅅㅎ.
ㅎㅇ이가 넘 빠르다고 하면서 ㅌㅇ이와 바꿉니다.
1월이 지나니까 새로운 반장을 뽑아야 하는데, ㅌㅇ이가 한 달 더하면 안되겠냐고 묻습니다. 아이들에게 찬성하는 사람 손들라고 하니까 거의 다 드네요.
상황 파악 못하고 가만히 있는 아이에게, 옆에서 '야, 빨리 손들어, 좋은 거야' ^^; ㅋ 박수로 반장 연임을 확정합니다.
반장으로서 하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어보니까, 이벤트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어떤 이벤트?'
'잠어 외우기'
아이들이 싫어합니다.
'다른 거 없어?'
'음... 과자 파티'
둘째 주에 쏜다고 하네요. 아이들이 좋아합니다 ㅎㅎ
2월 4일 김ㅎㅇ 생일, 축하 롤링페이퍼 쓴 것을 반을 대표해서 반장이 전해주게 하니까 색다른 느낌.
교사 회의 시간에 잠깐 얘기한 '찬양 열심히 하도록 하기'... 샘들이 기쁘게 하면, 그것이 전해져 언젠가는 아이들이 따라하겠죠.
생각해 보면 무엇인가를 정해서 아이들에게 억지로 이렇게 하라고 하는 것은 어쩌면 샘들의 욕심일 수도. 매력적이지 않은데 자발적으로 할 리가 없겠죠.
어떤 보상을 걸고 하는 것도 '자발적'과는 거리가 멀고. 항상 어려운 문제죠 ^^;
아이들 출석을, 오는 시각에 따라 동그라미와 세모로 표시하기. 찬양 시작 전에 오면 O, 시작 후에 오면 Δ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찬양과 함께 예배가 시작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겠죠. 어른들이 사용하는 '준비' 찬양이라는 말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좋겠네요.
어른 예배 때, 담임목사님도 찬양 전에 들어와서 성도들과 함께 찬양하다가 사회를 시작할 때가 되면 강대상에 올라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 그러면 묵상 전에 음향 체크도 되겠죠. )
집에서 우연찮게 이 준비 찬송 얘기가 나왔는데, 저희 어머니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찬양이 끝날 무렵에 목사님과 성가대가 함께 들어온다고 합니다.
뭔가 세상의 행사에서 청중들 세팅이 끝나면 높은 사람들이 들어와 앉으면서 식이 시작되는 모습이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뭔가 사정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 '함께' 나아간다는 생각과는 좀 거리가 있는 듯.
교회에서 나누어준 교회운영 규정을 훑어 보다가 잠시 '풉' - 최샘 뜰장 스토리와 꿈나무 반 편성이 생각나서.
제2장 뜰과 리더
제5조 ( 뜰 편성의 적정인원 )
1. 뜰은 6~8명의 인원으로 하고 최대한 10명을 초과하지 않는다.
2. 인원이 초과될 경우 교회는 수시로 새로운 뜰을 만들어 적절히 배치하여야 한다.
3. 사랑마을 목요학교는 위에서 예외로 한다.
누가복음 9장 1~6절
열두 제자를 보내면서 하나님나라를 전파하고 병든자를 고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줍니다 - 모든 귀신을 제어하고 병 고치는 능력
반대로 가지지 말아야 할 것을 이야기합니다 - 지팡이, 배낭, 양식, 돈, 두벌 옷
예수님 메시지의 일관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두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이방인들이 찾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 마태복음 6:32,33 )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 마태복음 28:18~20 )
현재의 한국 개신교는 위와는 반대로 가는 경우가 많죠. 미국 메가처치의 영향을 받아, 시설 좋은 예배당, 넓은 주차장,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그래서,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옥성호, 포이에마)라는 책이 나왔을 것입니다.
☞ http://ya-n-ds.tistory.com/1570
이런 방향으로 가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고, 헌금이 강조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큰 건물을 소유하는 것은 운영비, 고정비용 같은 것이 많이 들게 됩니다.
그런데, 그 헌금이 요렇게 쓰일 수도 있습니다. 좀 거시기 하겠죠 ^^;
☞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1406 : ㅇ교회, 성 추문 ㅎ 목사에게 전별금 8억 지급
☞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0804 : 전병욱 목사, "13억 전별금, 적으면 적었지 많다고 생각 안 해"
얼마 전에 헌금에 관한 설교 하나가 화제가 된 일이 있습니다.
☞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1372 : 헌금 내지 말고 어려운 이웃 위해 쓰세요
한달에 한번 교회가 도움이 필요한 곳을 스스로 찾아 도와주는 것. 익숙하지 않은 거지만, 어쩌면 예수님이 양과 염소 비유에서 이야기한 가장 작은 자를 돕는 연습이 될 수도 있겠네요.
목사님이 설교 중에, 병을 고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요즘은 몸에 생기는 병은 병원에 가면 된다고 하면서 '마음의 병'을 고치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람을 고치려고 했지 제도나 혁명 같은 것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만약 그런 것에 관심이 있었다면 로마제국에 대항했을 거라네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사람과 제도를 떼어놓을 수는 없을 겁니다. 사람이 결국 제도를 만들고 법을 떠나서는 살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혁명과 같은 방법이 아니더라도 제도를 고칠 수는 있습니다.
복음서을 보면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유대교에 집중한 것으로 보입니다. 인간의 몸으로 짧은 기간에 당신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 것이겠지요.
예수님이 거라사 지방에 가서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기도 하고, 두로-시돈 지방에 가서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쳐주는 일도 했지만 특별한 경우였습니다.
제자들에게도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합니다.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태복음 10:5,6)
이렇게 유대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전하기 위해 애쓰는 한편,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는 당신의 말처럼 잘못 변질된 유대교 제도를 바꾸기 위해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대립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성전에 들어가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낸 것입니다. 그리고, 바리새인, 사두개인들과 논쟁을 통해 율법에서 얘기하는 바른 모습이 무엇인지를 기회 있을 때마다 이야기합니다.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두려워한 것은 자신들이 누리고 있던 체제가 위협받는 것이었습니다. 기득권을 누리고 있던 그들에게는, 예수는, 오늘날의 말로 표현하면, 불순한 혁명가처럼 보였을 겁니다.
그래서 결국 죽이기로 모의를 하고, 빌라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지도록 합니다.
사람과 제도를 떼어 놓고 생각하는 것은 몸과 영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적 영지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기독교가 개인에게만 집중하는 종교였다면, 윌버포스의 노예제도 폐지 입법화나 루터킹 목사의 흑인 인권운동은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의미가 없는 일이였을 겁니다.
그리고 사람을 위한 제도의 변화는, 하나님이 말한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실천하는 한 방법이 됩니다.
얼마 전에 김ㅅ샘이 저에게 <예수>(김형석, 이와우)를 읽어봤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말과 행동을 전체적으로 보면서 그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작년에 꿈나무 아이들에게 읽혔던 '예수님 이야기'의 어른 버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 내용을 연관된 것끼리 묶어 놓아 보기도 쉽고 이해하기도 좋네요. 예수님 생애 중 자세하지 않은 부분은 저자의 상상력을 가지고 '이러지 않았을까?'라고 설명한 부분은 성경을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하는 즐거움을 주네요.
이 책을 통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물음을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책 마지막에 있는 '나는 왜 이 책을 썼는가', 독자가 고전을 읽고픈 마음이 생긴다면 화룡점정!
☞ http://cafe.daum.net/mooncoach/dLS4/2?q=%B1%E8%C7%FC%BC%AE%20%BF%B9%BC%F6%20%B3%ED%BE%EE&re=1
21세기 한국에서 예수님의 삶은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할까? 그 출발점이 사람에 대한 공감에서 시작해야 한다면 신영복님의 글들이 도움이 될 겁니다.
그 공감은 개인과 그 사람이 처한 환경(제도)을 아우릅니다. 사회 안에서 사람을 바라보는 것, 한국 보수 개신교에서 부족한 부분입니다.
☞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41099.html :‘장년 신영복’의 날카로운 사유
☞ http://ya-n-ds.tistory.com/2489 ( 신영복님 추모 )
꿈나무교회,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는 제자의 모습으로 자라고 보냄을 받으면 좋겠네요.
입춘이네요, 어느덧 겨울도 뒷모습을 보여주나요? 가족들과 함께 즐겁고 평안한 설 누리세염~
p.s. 남1반 아이들의 1월 감사~
☞ http://ya-n-ds.tistory.com/2508 ( 아이들의 감사 카드 )
p.s. 설교 중에 잠시 나왔던 '할랄 식품 단지 반대 서명', 어떤 사안에 대해 반대할 수 있으나 사실 관계가 정확해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는 '부메랑'이 되어 날아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목적을 위해 거짓과 과장을 사용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그들이 전하는 '복음'도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요.
☞ https://www.facebook.com/daewon.kwon.5/posts/911486885632085 : < 기독교인이 거짓 루머를 퍼뜨리지 않는 유용한 팁! >
☞ http://ya-n-ds.tistory.com/970 ( 수쿠크, 할랄 )
카톡을 통한 개신교 내의 유언비어 유통, 이것은 어제 오늘일이 아닙니다 ^^;
☞ http://www.crosslow.com/archives/5062 : ‘카톡 폭탄’ 터트리는 기독교
☞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1718 : 교회 '단톡방' 메시지 퍼 나르기 전에
☞ http://ichungeoram.com/10062 : 카드뉴스-‘괴담 마귀’를 아시나요?
이런 사이트를 이용해서 사실 관계를 확인해 보는 것도 좋겠네요.
☞ https://www.facebook.com/groups/1523716007870233/
p.s. '하나님' or '하느님'? 이 말이 한국어로 성서가 번역될 때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알려주는 흥미로운 글이 있네요.
☞ http://m.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22 : 왜 하느님 아닌 '하나님'일까
p.s. 교회의 규모가 커질수록 주일 예배가 일주일에 한번 제공되는 '관람'이 되기 쉽습니다. 한두 시간 정도의 예배 후에 집으로. 현대 사회의 사람들도 이런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해 알 수가 없죠. 그런 공동체를 교회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인지 소그룹을 지향하는 교회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1356 : 지역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30명 넘으면 분가하는 작은 교회
지난 주일 겨울성경학교에 대한 얘기를 하는 중에 이ㅈㅇ샘과 김ㅎ샘이 좋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이렇게 어떤 목적을 공유하며 함께 그것을 해 나가는 것이 공동체의 기초일 겁니다. 그러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고.
그나저나 60명 정도인 꿈나무교회의 분가는 언제쯤? ㅅㅈㅎ교회의 목회가 교사를 세우는 열매를 맺을 수 있을 때 가능하겠죠~ ^^;
※ 다른 'Dear샘s' 보기...
☞ http://ya-n-ds.tistory.com/tag/Dear샘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