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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과 다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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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패 달고 보니까 넘 커다란 이름이네요 ^^; 행여 고래 등 사이에 끼인 새우가 되지 않기를 ㅎㅎ 연암은 고미숙님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에서, 다산은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에서 삘 받았슴다. 잼난 놀이터가 되었으면... ^^
by 명랑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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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00:01

크리스마스 주일, 을미년 마지막 주일에 이어진, 병신년 첫주. 년말 년초, 성경의 장절처럼 때로는 편하지만 이런 구분이 삶의 의미를 가두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http://ya-n-ds.tistory.com/2454 ( 크리스마스, 곁에 있는 사람에게 평안한 말을~ )
http://ya-n-ds.tistory.com/2458 ( 굿바이 샘s & 아듀 2015 )

 

달라진 게 많아서 아직은 낯섭니다. 꿈나무 예배실에 들어서자마자 여섯 반을 위한 자리 배치.
반이 줄어서 반 사이의 공간만큼 여유가 조금 생겼네요. 들어오는 아이들도 잠시 어리둥절. 반 배치표를 보고 자기반을 찾아갑니다.
샘들 모임 때도 자리가 넉넉합니다 TT ^^;;

 

1,2학년 때 반 아이였던 홍ㅅㅇ, 김ㄷㅎ, 이제는 그때의 어린티는 온데 간데 없고 세상을 '달관'한 듯한 모습? ㅋ
아이들이 말이 많네요. 첫날 분위기로는 나쁘지 않아요. 남녀로 반을 나누는 것, 괜찮은 것 같습니다.
월마다 돌아가면서 반 대표 정하기로. 1월은 6학년 형들을 제치고 5학년 김ㅌㅇ. 나서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죠.
그런데 다음주에는 10일 동안 성경암송 캠프 가서 못나온다고 합니다. 대신 그 다음주에 암송한 것 들려준다네요. 기특한 넘 ㅎㅎ

 

아이들의 미션, 요런 것 하면 좋겠네요. 혼자하는 게 아니라 앞장 서도록.
1. 간식 먹고 치우기
2. 예배 전 성경 찾기
3. 찬양 열심히 하도록 이끌기

 

'반이름은 어떤 게 좋을까?'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데 남자 아이들이라서 그런지 이상한(?) 것들을 내놓습니다.
좀더 눈에 띄어 보려고 그런지 점점 더 '과격한' 단어가 나오네요. 이런 '자학적인' 것들을 통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나 봅니다 ㅋㅋ
이렇게 정했습니다 - '丙申'반

 

인터넷 사전을 찾아보니 이런 뜻이 있습니다.
丙 : 남녘, 밝다, 빛나다
申 : 서남서, 거듭, 늘이다, 펴다, 다다르다, 십이지신 중 아홉째(원숭이)
-> 밝음을 펴서 (하나님에게, 이웃에게) 다다르게 해 볼까요? ^^

 

다음주 남1반의 예배 인도. 이ㅅㅎ, 기도를 하기로 했습니다. 헌금은 윤ㅅㅎ이와 홍ㅅㅇ.

 

교사회의. 찬양율동팀이 주이슈가 되었습니다. 통과의례 개념의 오디션으로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기로.
총회의 강습회 이야기가 나와고 그것을 배워서 이렇게 저렇게... 김ㅈ샘이 부담스러워 합니다. 누군가 같이 할 사람이(청년)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
개인적으로는, '현 상태에서 찬양율동팀이 새로운 찬양을 꼭 추가해야 할까? 이전에 했던 곡들로도 충분히 예배할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인 생각은, 현재는 김ㅈ샘이 생각한 대로 팀을 이끌어 가도록 하고, 청년샘이 오면 그때 함께 할 일을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특정 주제에 대해서(그리고 그것을 맡은 사람이 정해져 있으면) '거룩한 부담감'이라는 말을 하면 그냥 '부담'이 되어 버립니다. '거룩한 부담감'은 하나님과 나 사이의 일인데, 제3자가 나서서 당사자를 앞에 두고 말을 해버리면 강한 '압박'이 되기 쉽죠.
저처럼 '미움 받을 용기'를 훈련하고 있는 사람은 그냥 '앙돼여~'라고 할 수 있지만, 타인의 눈을 의식하는 일반적인 한국인의 정서에서는 'No'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이미 꿈나무 교사로 있는 것 자체가 '거룩한 부담감'이 있다는 것인데, 특정한 일에 대해서 부담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주일학교 교사는 예배/모임 시간 지키고 열심히 참여하는 것만 기본적으로 잘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주일학교에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행정일을 나누어서 하고.

 

어른 예배와 주일학교 예배 설교의 일원화 논의. 김ㅈ샘이 작년에 집에서 아이들과 주로 나눈 내용이 설교보다는 2학기 달란트잔치 준비하면서 시작한 '예수님 이야기'였다는 것은, 학부모와 아이들을 연결할 고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힌트가 되지 않을까요?

교회 조직표를 보니까, 당회에 '교육위원회'라는 것이 없네요. '차세대교회'라는 조직으로만 남겨지나요? 컨트롤타워 비슷한 것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세대별목장'에 있는 한 뜰의 뜰장으로 최샘이 들어가 있습니다. '한해 동안 리프레쉬하고 새롭게 시작하나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점심 먹으면서 만난 최샘. 조직표를 본 지인이 뜰장된 것을 핸폰으로 알려줬다네요 ^^; 어떻게 본인은 모른 체로 이름이 올라갈 수 있을까요?
회사에서도 어떤 일을 맡길 때는 면담을 통해 의사를 물어보는데. 아, 내보낼 사람을 통보 없이 이상한 부서로 발령내는 경우는 있죠 ^^;
교회에서 상명하복 피라미드형 조직의 필이 느껴지네요? 조직을 만들어 놓고 그곳에 사람을 채우는 형식, '순종'의 이름으로?
세상이 그렇더라도, 교회는 일과 조직이 사람보다 우선해서는 안됩니다. 요즘은 세상에서도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수평형 모델을 강조합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처럼, 교회 조직도 사람을 위해 있어야 하겠죠. 그리고 시간을 들여 성도를 동역자로 세워야지, 그냥 부서의 일원으로 배치해서는 안될 겁니다.

 

1월 1일에 읽은 히브리서 6장 1절~3절, 매우 무겁네요 ^^; 올 한해 이르러야 할 '성숙한 지경'은 어디일까요, 그리고 가는 동안 어떤 만남들이 있을까요, 궁금하고 두렵고~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초보적 교리를 넘어서서 성숙한 경지로 나아갑시다. 이제 와서 죽음에 이르는 행실을 버리고 돌아서는 일과 하느님을 믿는 일과
세례와 안수, 그리고 죽은 자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과 같은 기초적인 교리를 다시 배우는 일은 없도록 합시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대로 우리는 성숙한 지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저희 어머니를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 '손목(뼈)이 잘 낫고, 당 조절이 잘 될 수 있게'

 

감기는 약을 먹으면 2주, 먹지 않으면 보름 동안 간다고 했던가요? 지지난 주 월욜부터 목을 아프게 했던 기운이 이제 물러감을 느낍니다. 아직 여진이 조금 남아있지만.
바이러스는 해마다 강해지는지, 혹은 몸이 해마다 약해지는지, 아니면 둘다인지 점점 아픔이 심해지네요 ^^;

 

한해 건강하세요~

 

 

p.s. 얼마 전에 보았던 한때 부교역자였던 분의 고백. 점점 악화되는 개신교의 '담임목사-부교역자' 체제의 단면일 겁니다. 어쩌면 양극화의 개신교 버젼일 수도 있습니다.
http://www.gosc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496 (‘목사 안수’를 포기한, 전직 부교역자의 희망 )

 

작년부터인가 이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목회자들 사이에 '동역자'라는 생각이 회복되지 않으면 풀리기 힘들 것 같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갑을' 현상이 해결되지 않는데, 어떻게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수 있을까요? ^^;
http://www.theosnlogos.com/news/articleView.html?idxno=884 ( 부교역자들, “내 삶은 종ㆍ머슴, 노예에 가깝다” )
http://cemk.org/2008/bbs/board.php?bo_table=2007_notice&wr_id=3039 ( '한국교회 부교역자를 생각하다' 설문결과와 자료집 )

 

부교역자 이슈가 목회자들 사이의 동역자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아 발생한다면, '가나안성도' 현상은 교역자와 성도들 사이에 동역자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아 나타나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만민제사장주의를 강조하는 개신교에서는 교역자 역시 성도에 포함되겠지만 역할을 나누기 위해서 '교역자'와 '성도'를 구분했습니다 )
http://ya-n-ds.tistory.com/2301 ( '가나안 성도' 논의 )

 

사도 바울의 말의 일부를 열심히 전하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 삶을 사는 목회자들이 있는 곳에는 이런 갈등은 없겠죠?

 

만민제사장주의에 근거한 (교역자들을 포함한) 성도들의 '성숙'이 필요합니다.
-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오는 성령의 은사에 집착하거나 머무르지 않고,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성령의 열매를 맺어,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바울이 가장 좋은 것(은사)이라고 이야기한 '사랑'에 이르는 것.

 

 

p.s. '새해 해맞이', 그 기원을 따라가 본 글이 있네요.
http://www.itkc.or.kr/itkc/post/PostServiceDetail.jsp?menuId=M0444&clonId=POST0018&postUuid=uui-8d9d5bef-d85d-4d65-bacf-04dd : 새해 해맞이의 정체

 

 

※ 다른 'Dear샘s' 보기...
http://ya-n-ds.tistory.com/tag/Dear샘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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