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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과 다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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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패 달고 보니까 넘 커다란 이름이네요 ^^; 행여 고래 등 사이에 끼인 새우가 되지 않기를 ㅎㅎ 연암은 고미숙님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에서, 다산은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에서 삘 받았슴다. 잼난 놀이터가 되었으면... ^^
by 명랑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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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00:01

크리스마스가 코 앞에. 달란트 잔치 선물을 정리해 놓으면서, '아, 2015년에 작별인사를 할 때구나' 하는 왠지 짠한 마음이 다가오더라구요.
한 해 동안의 샘들의 애씀을 양분 삼아 아이들이 잘 큰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내년이 걱정이네요. 부장샘은 지난 주에 샘이 적어서 반편성을 어떻게 해야 할까 장고에 들어간 듯~ 노답? ^^;

 

지난 주 1부 예배 광고 시간에 들었던 '착함~무능'이라는 말. 마음이 많이 불편했습니다.
제3자도 이럴진대 당사자인 부교역자들은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들구요 (음, 그냥 그러려니 받아들이는 분들도 있을 수도 있겠네요).
이전에도 가끔 예배 환경이 마음이 안들 때 담임 목사의 부교역자들을 향한 '까칠한' 지적들이 있었습니다.
성도들 앞에서 굳이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예배 후에 따로 조용히 얘기해도 될 텐데. 요즘은 회사에서도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질책을 하는 것을 자제시키고 있습니다. 따로 불러 이야기를 합니다.
한 곳에 모여 앉는 것, 예배에 집중하는 것과 비례할까요? 설교자가 보기에 안좋다는 이유로 자리를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본질적이지 않은 것에 사람들이 신경 쓰게 하는 것, 어쩌면 관계의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요즘 김무성님의 말들이 자꾸 이슈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다른 사람들 보기에는 인종 차별적인 말을, 함께 봉사를 하던 흑인에게 '친근한' 표현이라고 하면서 해서 국제적으로 그 이름을 알렸습니다.

 

외신, 김무성 발언 타전 시작. "김무성은 트럼프"
<로이터> 기자 "어이가 없어", <교도통신> 신속 보도
http://www.viewsnnews.com/article?q=127094

 

정작 본인은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김민아님은 이렇게 짚어냅니다.

 

"부지불식간에 속마음을 들켜버리는 실언을 ‘프로이트의 말실수(Freudian slip)’라고 한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따르면 ‘말실수’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억압된 무의식이 의식에 개입해 남에게 감추고 싶은 생각을 본의 아니게 밖으로 드러내는 일이다. 김 대표의 말실수를 가벼이 넘겨버릴 수 없는 이유다."
(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12212052315 : 왜 김무성에게만 관대한가 )

 

어쩌면 이런 모습은 오래 전부터 쌓여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냥 리더의 '호탕함'으로 이렇게 저렇게 넘어가면서 본인이나 주변 사람이나 익숙해져버린 것일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새내기로서 새롭게 상황을 바라보는 이경미님에게는 이상하게 보이는 거겠죠.

 

"기자든 의원이든 당직자든 닥치는 대로 ‘야, 니(너)’라고 부르며 반말을 하는 모습에 뜨악했다. 주위에서 “저 사람 원래 저래”라며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분위기도 의아했다."
(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bar/721196.html : ‘무대’와 ‘무대뽀’ 사이…기자가 본 김무성 )

 

리더라고 하는 사람들이 '브레이크'를 밟지 못하는 것은,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허용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어떨까요?
대학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가  '혼용무도'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주위의 국무위원이나 여당 국회의원들 중에 적극적으로 말리는 사람은 없고 오히려 '용비어천가'를 부르기 때문일 겁니다.
http://www.nocutnews.co.kr/news/4521155 ( 혼용무도, 사실은 이 뜻이라 전해라 )

 

세상 관점의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한국 개신교 교회의 직분도 세속화된 부분이 많아 이런 일들이 눈에 자주 띕니다.
예수님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곳은 이런 일이 없겠죠.

 

"제자들 가운데 누가 제일 높으냐 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서 말다툼이 일어났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신 다음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를 받아들이면 곧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또 나를 받아들이면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중에서 제일 낮은 사람이 제일 높은 사람이다."
( 누가복음 9:46~48 )

 

ㅅㅈㅎ교회의 성도들에게는 목사님의 공개적인 질책이 익숙한가 봅니다. 저는 아직은 몇 년 안된 새내기라서 많이 낯섭니다.
그런데요, 성경을 기준으로 보면 낯설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동역자들에게 안내나 광고를 제대로(?) 못했을 때 이런 식의 질책을 했을까요?
자신의 동역자들에게 이렇게 얘기할 수 있었을까요?

 

바울이 공개적으로 질책을 한 때가 있었습니다.
갈라디아서 2:11~14을 보면 안디옥에서 베드로가 이방인 형제들과 함께 식사를 하다가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인 형제들이 오자 자리를 떴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없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막힌 담을 다시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였으므로 바울은 즉시 베드로의 잘못을 지적합니다. 아니면 반죽 안의 누룩처럼 잘못된 복음이 교회 안에 퍼졌을 겁니다.

 

이 글의 내용이 목사님에게 전해지면 좋겠네요. '뒷담화'가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작용하기를~ ^^
http://weekly.donga.com/List/3/all/11/96505/1 ( 의사소통 채널 많아야 “까라면 까” 막을 수 있다 )

 

크리스마스,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이땅에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셨다고 강조합니다. 예수님을 닮아간다면 주위 사람들에게 건네는 말은 어떻게 변할까요?

크리스마스 연휴와 함께 즐겁게 2015년 매듭짓고,
설 연휴로 신나게 2016년 풀어 보세요~ 메리크리스마스!

 

 

p.s. 성탄절에 어떤 생각을 하나요. 이런 삶의 묵상들이 있습니다.
http://ya-n-ds.tistory.com/2446

 

 

p.s 법륜스님이 성당에서 '즉문즉설'을 했습니다. 어느 목사 사모의 질문에 대답한 내용이 인상적입니다.
예수님이 간 길에 대해 일반적인 목사님들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스님이 목사 부인에게 예수의 길을 말하다
목사 남편이 장학금도 교수자리도 교회도 늘 뺏기고 쫓겨나고 하는데...
http://well.hani.co.kr/655482

 

“이분을 위해 큰 격려의 박수 한번 부탁드립니다.” (청중 박수)
“이건 어떤 인생의 길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의 길을 따를 것인지, 세상의 길을 따를 것인지를 먼저 선택하셔야 해요. 관점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기 때문에 지금 혼란스럽지 않나 싶거든요. 그리스도의 길을 따른다는 관점에서 보면 지금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세상의 길을 따른다는 관점에서 보면 굉장한 고난을 겪고 있지요. ‘내가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라는 문제인데, 질문자는 지금 세상의 길이라는 관점을 갖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 일이 뜻대로 안 되고,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겪느라 원망도 생깁니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기는 하지만 질문자의 신앙은 그저 어려울 때 하나님이 돌봐주기를 바라는, 즉 나를 중심으로 놓고 하나님의 복을 비는 신앙의 틀을 못 벗어나고 있어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까지도 원망스럽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목사의 길을 갈 때는 세속의 이익이나 명예나 직위를 추구하는 길을 간 게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길, 즉 고난의 길을 선택한 거예요. 그렇다면 지금 이 길은 축복받은 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섞어서 생각하니까 혼란스러운 거예요.
예수님은 고난의 길을 가신 분이잖아요. 한번도 사회 기득권층으로부터 예수님이 인정받거나 환영받은 적이 없고, 마지막에는 혹세무민했다는 모함을 받아 사형 언도를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잖아요. 그런데 그때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어요?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하셨습니다.
예저는 어릴 때 교회를 다녀서, 크리스마스 연극을 할 때마다 동방박사 역을 했습니다.(청중 웃음) 아기 인형을 구유에 뉘어 놓고 ‘동방 박사 세 사람 귀한 예물 가지고’ 이렇게 노래부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그렇게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와서 가장 높은 지위로 올라가신 분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는 평생을 고난의 길만 걸으셨어요. 한 번도 환영받는 길을 걸은 적이 없어요."

 

 

p.s. 얼마 전에 본 훈훈한 기사. 종교에 관계없이 착한 사람은 착하네요~

 

기독교인 색출에 "우리도 죽여라"... 버스테러 목숨 걸고 맞선 케냐 무슬림
이슬람 복장^물건 건네며 적극 보호도
http://www.hankookilbo.com/v/a03403e86db140f5a9fa6b67b33aa3fe

 

 

※ 다른 'Dear샘s' 보기...
http://ya-n-ds.tistory.com/tag/Dear샘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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