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www.facebook.com/88sanha : 페북
☞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List&sc_code=1449643902 :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이야기
☞ http://ya-n-ds.tistory.com/2151 ( 상식 키우기 : 역사 )
빛나지 않는 곳에서 누구보다 찬란하게
올해 8월 세상을 등진 정창교는 겸손하면서도 유능한 사람이었다. 정당 선거에서 전자투표를 도입하고 국민참여경선을 성사시켰다. 스스로는 빛을 보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빛났던 사람이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588
‘광주 출전가’ 만든 그의 삶과 음악
‘광주 출전가’를 작곡한 문성인은 한 맺힌 광주 시민을 복돋우는 노래를 만들었다. 이후 승려가 된 그는 2013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세상과 작별할 때까지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노래를 만들고 불렀다.
문성인(정세현, 범능 스님)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574
1980년대를 살았던 빛나는 청춘들에게
586 세대는 공공의 적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과거 독재정권에 맞서 그들이 보여준 용기와 헌신은 우리 역사의 빛나는 유산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일신만을 위해 살지는 않겠다고 다짐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238
( "나이 서른에 우린 어디에 있을까... 젊은 날의 높은 꿈이 부끄럽지 않을까..." )
영롱하게 빛났던 한·일 교류의 순간
일본 외교관 호슈는 성실과 신의로 조선을 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 통역사 현덕윤은 일본인을 배려하다 곤장까지 맞았다. 일본이 먼저 성신(誠信)의 정신을 회복해야 하겠으나, 우리 또한 두 인물의 자취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https://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5269
일본의 실체 알린 조선 선비 신숙주
신숙주는 임금에게 남긴 유언에서까지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강조했다. 그가 7개월간 일본을 두루 둘러보고 와서 쓴 <해동제국기>는 당시 ‘일본 바로 알기’의 교과서였다. 우리는 지금 일본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https://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5232
세상에서 돈을 제일 잘 쓴 김만덕
김만덕은 임을대기근(1792~1794) 당시 굶주린 제주 백성을 살린 여걸이다. 유통업으로 큰 부를 일군 그는 재물을 꼭 필요한 이들에게 풀어 사람과 세상을 구했다. 김만덕의 지혜와 용기, 사려 깊은 행동이 대기근도 이겨냈다.
https://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4646
호남선 기차에는 왜 눈물이 내렸을까
호남선은 해방 당시 호남 인구 3분의 1 이상을 타지로 실어낸 철도였다. 열차 사정은 폭폭했고,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참사도 일어났다. 그 기차에 탔던 사람들은 왜 그런 대접을 받아야 했던 걸까.
https://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3665
왕조의 몰락 지켜본 시어머니와 며느리
조선 왕조와 대한제국의 마지막을 지켜본 황태자비와 황태손비는 외국인이었다. 영친왕 이은의 아내는 일본인 마사코, 영친왕 아들 이구의 아내는 미국인 줄리아였다.
https://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3372
베트남 정부로부터 환대받은 화산 이씨
머나먼 베트남이지만 의외로 우리와 인연이 많은 나라이다. 사신들이 중국에서 만나 교류했고, 몰락한 베트남의 왕족은 고려로 건너와 정착했다. 화산 이씨, 정선 이씨라는 성을 사용했다.
https://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3202
( 고려 왕조의 개방성 : '내자불거(來者不拒)', 인재 등 인력 확보 )
여순사건 70 주년을 맞아
손양원 목사와 여순'항쟁' 불가 이유
https://www.facebook.com/88sanha/posts/2314023571976148
부부의 이름 앞에 민주주의라고 쓴다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건국의 유공자인 8선 의원 정일형은 박정희 군사독재를 비판했다. 그의 아내 이태영은 여성 최초의 사법고시 합격자였다. 이 부부는 민주화 운동을 하다 국회의원직·변호사직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https://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2581
( “내가 항일 투쟁할 때 일본군의 앞잡이는 누구이며, 내가 반공 대열에 섰을 때 여순반란 사건에 가담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내가 민주화 운동을 할 때 독재자로 전락한 사람은 누구인가?” )
잔인한 나라에서 일군 죽산의 시대정신
조봉암은 해방 후 제헌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농지개혁을 주도한 초대 농림부 장관이다. 그는 평화통일과 사회민주주의적 강령을 내세운 진보당을 창당하고 이승만의 표적이 되어 스러지고 말았다.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2509
거리의 변호사와 ‘사법 농단’
허헌, 이인, 김병로. 이들은 일제강점기에 헌신적이고도 열정적인 변호를 펼쳐 조선인의 존경을 받았다. 특히 김병로는 해방 후 초대 대법원장으로서 이승만 정부의 오만을 견제하며 사법 정의를 세웠다.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2432
‘헤이그의 밀사’ 이준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2412
‘호조 서리’ 김수팽, 판서의 바둑판을 뒤엎다
조선 영조 때 김수팽이라는 이는 나라의 살림살이를 도맡은 호조에서 서리로 일했다. 그는 부당한 권력에 맞서 원칙을 지키고 법을 집행했던 사람들 중 한 명이다.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2344
'영헌공' 보기가 부끄럽지 않을까
어느 시대에나 대의에 목숨을 걸고 ‘권력자든 백성이든 지켜야 할 도리’를 설파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려 시대의 ‘영헌공’ 김지대는 절대 권력자 아들의 횡포에 법과 도리를 내세워 맞섰다.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2286
정주영의 생애 최대 이벤트
정주영은 한국의 정치·경제사에서 두드러진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특히 1998년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어 방북한 일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이를 두고 프랑스의 철학자 기 소르망은 ‘20세기 최후의 전위예술’이라고 격찬했다.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2196
< 이상 "안희정 지사가 촛불 앞에 사과하라"는 이재명 시장의 요구가 불합리한 이유를 적어 봤다. >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584160111629168&set=a.559712920740564.1073741826.100001055837349&type=3
세상을 바꾸는 것은 미륵이 아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미래에 오실 부처님, 미륵을 기원하는 신앙은 정치 영역에서도 나타난다. ‘한국 최초의 미국 박사’인 이승만을 좌익 진영의 여운형과 박헌영마저 미륵처럼 떠받들었다. 그러나 실망만 남았다.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8308
( 촛불을 통해 배워가(야하)는 것이겠죠~ )
‘영혼 있는’ 공무원은 상명하복하지 않는다
보도연맹 가입자들을 학살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문형순 성산포경찰서장은 부당하다며 거부한다. 재단을 만들라면 만들고,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라면 그렇게 하는 영혼 없는 공무원의 ‘충성스러운’ 모습과 대비된다.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8235
거짓말하는 저들을 사하지 마옵소서
용서를 위해서는 진정한 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 게이트 관련자들은 국회 청문회장과 언론의 마이크 앞에서 국민을 기만했다. 진정한 사과란 무엇인지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 있다.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8169
6월 항쟁 열기 식자 ‘어둠의 세력’ 꿈틀
1987년 6월 항쟁의 열기는 뜨거웠다. 7월에서 9월까지는 노동자 대투쟁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 후에는 ‘어둠의 세력’이 조장한 지역감정이 급속히 퍼져나갔다. 야권은 분열되었고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7892
왕을 죽게 한 비선 나라를 망친 애국심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2세는 ‘비선 실세’를 총애하고 귀족들과 맞서다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파라과이의 로페스 대통령은 애국심을 바탕으로 남미 3국과 전쟁을 벌이다가 대패해 큰 피해를 입혔다.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7839
극단의 시대를 산 최후의 20세기 인물
쿠바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는 사회 모순에 분노하며 미국과 독재정권에 맞섰다. 몬카다 병영 습격 작전에서 실패한 그는 법정에서 ‘역사가 나의 무죄를 증명하리라’고 변호했다. 11월25일 9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7766
한국전쟁 때도 7시간이 문제였다
한국전쟁 때도 7시간을 허비했다. 육군 참모총장은 과음 후 인사불성이었고, 작전국장은 전화 연락이 안 되었으며, 국방부장관은 일요일을 즐기고 있었고, 대통령은 낚시 중이었다. 그 시간에 전선은 초토화되었다.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7726
( 스탈린 + 베리야 / 이승만 + 채병덕 + 장창국 + 신성모 / 박근혜 + 김기춘 + ... ? )
오뚜기 김종필, 역사에 죄를 짓네
풍운아 유자광, 오뚝이 김종필은 여러 면에서 닮았다. 김종필은 대통령직 빼고 모든 요직을 경험했으며, 유자광처럼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역동적인 꿈틀거림을 지켜보았다.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7617
( “우리는 참 재미있는 삶을 살았소. 그렇지 않은가? 모든 것은 우리 손바닥 안에 있지 않았는가.” )
“한국은 나쁜 나라입니다”
1894년 갑오개혁에서 고문, 연좌제 등 전근대적인 형벌이 폐지되었다. 그러나 고문자가 원하는 대답을 얻기 위해 사람을 망가뜨리는 이 행위는 120년 넘게 이어져왔다. 영화 <자백>은 그 명백한 증거다.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7555
이런 나라가 아니었고 아니어야 한다
왕권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할 때 벌어진 전쟁에서도 오합지졸 프랑스군은 ‘프랑스 만세’를 외치며 승리를 거뒀다. 나라에도 국격이 있고 시민에게도 체면이 있다. 왜 싸워야 하는지 아는 이들은 자신의 존재로 새 세상을 열었다.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7508
그 승마 선수가 아직도 이대에 다녀요?
1989년 고려대에 전두환의 조카가 승마 특기자로 입학했다. 그의 체중은 95㎏이었다. 26년 뒤 이화여대에 박근혜 정권 실세의 딸이 역시 승마 특기자로 입학했다. 이번에도 입학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7402
‘군인의 명예’를 들먹이는 이들에게
6·25 당시, 국군 수뇌부가 대전까지 피란 간 상황에서도 일부 소대원은 부상병과 환자를 지키기 위해 서울대병원에 남았다. 이들은 최후의 한 명까지 싸우다 전사했다. 국군의 명예를 드높인 건 이름 없는 용사들이었다.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7347
전문가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렸다
1954년 자유당의 ‘사사오입’ 개헌 때는 수학자 최윤식 교수가, 1905년 러시아 전함 포템킨 호에서는 군의관 스미르노프가 전문가의 양심을 버렸다. 2016년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두고도 전문가의 민낯이 드러났다.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7277
백남기씨는 왜 그런 삶을 살았을까?
고 백남기씨는 중앙대 재학 중 유신정권에 맞서 싸우다 두 번이나 학교에서 쫓겨났다. 1980년 복교한 뒤 후배들 수천명을 이끌고 서울역 집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 때 제적되고 농민의 길을 택했다.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7203
망국신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구나
중국 옛 학자 유향은 ‘사악한 신하’를 6가지로 구분했다. 복지부동한 구신, 아첨하는 유신, 질투하는 간신, 이간질하는 참신, 당파 짓는 적신,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갖춘 망국신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육사(六邪)가 있을까?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7024
역사 속 ‘미러링’이 건네는 고민거리
미국의 노예 해방론자 존 브라운은 노예 옹호론자들을 ‘미러링’ 방식으로 테러했다. 링컨 대통령은 그를 ‘오도된 광신도’라 비난했지만 데이비드 소로는 옹호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메갈리안’의 미러링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6698
( 불쾌한 소음 vs. 불안한 현실 )
후쿠자와 유키치의 비웃음이 들린다
'자식이 역적이면 부모도 역적, 부모가 역적이면 자식도 역적’이던 연좌율은 조선 시대 내내 맹위를 떨쳤다. 연좌제는 1894년 갑오개혁으로 공식 폐지되었지만 현대사 곳곳에서 되살아나 고통을 안겨주었다.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6075
( "자식의 잘못 때문에 아비를 죽일 수 없고, 아비의 잘못 때문에 자식을 죽일 수 없다. 죽을 사람은 죄지은 바로 그 사람이다." - 신명기 24장 16절 )
잔인한 4월에 다시 쓰는 이름
4월16일이 다시 돌아온다. 분노 속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도 있다. 기억의 단절은 역사의 단절이고, 역사의 단절은 곧 배움의 단절이다. 우리가 먼저 지켜야 할 것은 ‘이들’에 대한 기억일지도 모른다.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28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