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암과 다산 사이

블로그 이미지
문패 달고 보니까 넘 커다란 이름이네요 ^^; 행여 고래 등 사이에 끼인 새우가 되지 않기를 ㅎㅎ 연암은 고미숙님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에서, 다산은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에서 삘 받았슴다. 잼난 놀이터가 되었으면... ^^
by 명랑만화
  • Total hit
  • Today hit
  • Yesterday hit
05-18 13:34

"나는 너희의 절기를 미워한다. 너희의 종교 모임이 역겹기만 하다.
너희가 태워 드리는 번제물과 곡식 제물을 내게 바쳐도 나는 받지 않겠다. 화목 제물로 좋은 것을 바쳐도 나는 거들떠보지 않겠다.
너희의 노래를 멈추어라! 나는 너희의 비파 소리도 듣지 않겠다.
오직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고 의의 강이 마르지 않게 하여라.
이스라엘 백성아,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을 사는 동안, 내게 희생 제물과 소제물을 바친 적이 있느냐?
이제는 너희의 우상인 거짓 왕 식굿과 너희의 별신 기윤을 짊어지고 다녀야 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다마스커스 저 너머로 사로잡혀 가게 하겠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그분의 이름은 만군의 하나님이시다." ( 아모스 5:21~27 )

""I hate, I despise your religious feasts; I cannot stand your assemblies.
Even though you bring me burnt offerings and grain offerings, I will not accept them. Though you bring choice fellowship offerings, I will have no regard for them.
Away with the noise of your songs! I will not listen to the music of your harps.
But let justice roll on like a river, righteousness like a never-failing stream!
"Did you bring me sacrifices and offerings forty years in the desert, O house of Israel?
You have lifted up the shrine of your king, the pedestal of your idols, the star of your god -- which you made for yourselves.
Therefore I will send you into exile beyond Damascus," says the LORD, whose name is God Almighty."

 

아모스서를 읽어보니 정의가 없는 제사는 하나님이 매우 싫어하네요.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가지고 사람들을 죄인으로 판단하는 것을 꾸짖으면서 같은 맥락의 호세아서를 인용합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마태복음 12:7 )

 

호세아는 이렇게 외칩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진실한 사랑이며, 태워 드리는 제사인 번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 호세아 6:6 )

 

정의 없는 제사는 어찌보면 행함 없는 믿음과 비슷합니다. 시쳇말로 '앙꼬 없는 찐빵'이겠죠.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지만 이웃들과의 삶은 불의한,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함과 멀어지는.

 

예물을 드리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면 먼저 형제와 화해하고 후에 예물을 드리라고 하는 것도 같은 뜻이겠죠. ( 마태복은 5:23,24 )

한국 개신교에서 인기 있는 책이 있습니다 - '록펠러 십일조의 비밀을 안 최고의 부자'(이채윤, 북오션)
십일조의 축복을 강조하는데 자주 인용됩니다. 그런데 그 예물을 하나님은 어떻게 봤을까요?
http://www.newsm.com/news/articleView.html?idxno=1476 ( 부흥사들이 말하지 않는 록펠러의 비밀 )

 

보수 개신교을 보면 하나의 형식을 강조함으로써 성경에서 지적하는 다른 잘못된 것들을 덮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6월에 있었던 '퀴어 축제'와 미국의 '동성결혼 판결'을 앞두고 이런 기사가 나온 것이겠죠.
http://m.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9293 ( 지금, 개신교가 동성애 반대에 힘 쏟을 만큼 한가한가요 )

이 글 안에 있는 한 단락은 잠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뒤돌아보게 해줍니다.

 

"며칠 전 〈주간경향〉은, 보수 개신교가 왜 동성애를 반대하는지에 대한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내부의 문제를 가리기 위해서라고 했지요. 그런 말을 들으면 참담하지 않나요. 세상이 교회를 향해 자신들의 문제를 덮기 위해 그런다고 해석합니다.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절대로 동의하고 싶지 않겠지만 그 지적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교회의 민낯입니다."

 

예수님은 율법교사에게, 제사장, 레위인, 사마리아인의 행동을 이야기한 후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 누가복음 10:25~37 )
심판날 양과 염소를 나누는 비유를 통해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예수님에게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 마태복음 25:31~46 )
바울서신의 일부를 짜집기해서 이상하게 변해버린 '아르뱅주의' 같은 '이신칭의'를 붙들지 않고,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과 행동을 따르면 한국 개신교의 성도들이 좀더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인애)가 깃든 예배를 드릴 수 있겠죠.


p.s. [ㅇBㄷ] '천하무적 아르뱅주의' - '넓은길'을 '안녕'하게 가볍게 가기
http://ya-n-ds.tistory.com/2102 

 

 

p.s. 공의와 제사의 발란스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글입니다.

<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 일상과 예배 >
http://ekosta.org/entry/%EA%B9%80%EC%98%81%EB%B4%89-%EB%82%98%EB%8A%94-%EC%9D%B8%EC%95%A0%EB%A5%BC-%EC%9B%90%ED%95%98%EA%B3%A0-%EC%A0%9C%EC%82%AC%EB%A5%BC-%EC%9B%90%ED%95%98%EC%A7%80-%EC%95%84%EB%8B%88%ED%95%98%EB%A9%B0-%EC%9D%BC%EC%83%81%EA%B3%BC-%EC%98%88%EB%B0%B0-1

 

 

※ 다른 생활의 발견 보기
http://ya-n-ds.tistory.com/tag/생활의발견

 

 

 


 

 

 

 

 

AND

ARTICL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4308)
올드Boy다이어리 (528)
올드Boy@Jeju (83)
올드Boy@Road (129)
올드Boy@Book (57)
숨은길찾기 (14)
스펙트럼 (104)
우물밖엿보기 (32)
교회에말걸기 (225)
이어지는글들 (52)
하하호호히히 (73)
어?...아하! (121)
대한늬우스 (1573)
세계는지금 (255)
차한잔의여유 (64)
La Vita E Bella (229)
좋은나라만들기 (91)
트위터세상 (67)
사람&말 (587)
호모파베르 (20)

RECENT ARTICLE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CALENDAR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